어제는 미친 소식이 있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 자율화 3단계 추친 계획'을 발표했어요.
이중 가장 눈길이 가는 소식은 우열반과 0교시 수업 부활이겠지요.
전국 초중고교 전부를 대상으로 합니다.

자율화라는 미명하에 3단계에 걸쳐 '규제'가 철폐된다고 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상투적인 레퍼토리지요.
자율과 규제 철폐.
이름은 썩 좋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건..
이건 정말 아니지 않습니까?

아주 어릴 적에 [믿거나 말거나]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배트맨에서 잭 니콜슨이 있는 범죄집단의 두목으로 나왔던 잭 팰런스 아저씨가 진행하는 기기묘묘한, 믿기지 않는 세상사의 이모저모를, 가벼운 흥미 위주로 전해주는 오락프로그램이었죠.

그 [믿거나 말거나]에 우리나라 학생이 등장한 일이 있습니다.
이따만한 가방을 메고 우리나라 학생들이 서 있는 사진을 보면서, 잭 아저씨가 그럽니다.

"정말 저런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학생들이 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요."

[믿거나 말거나]란 프로그램이 아직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만약에 있다면, '믿거나 말거나'에 나올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자율화'라는 미명하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4.15 쿠데타에서 일단계로 폐지되는 지침들을 살펴보면요.
우선 앞서 말씀 드렸던 우열반과 0교시 수업이 부활했습니다.
방과후에는 학교에서 외부 학원강사가 참여하는 수업이 가능해집니다.
학원 등에서 출제하는 사설 모의고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신문 '단체구독 금지'도 풀린답니다(소년조선일보 소년동아일보 좋겠네요).
교육감과 학교장에게 전권을 부여했어요.
앞으로 벌어질 일은 눈을 감아도 총천연색 파노라마로 펼쳐져 보입니다.

얼마전이죠.
영어몰입교육의 광풍이 몰아칠 던 그 때, 교육학을 전공하는, 그리고 한 아이의 학부형이기도 한 누나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때 그 누나가 그랬죠. 이제 교육의 중심이 공교육이 아닌, 이미 예전에도 그랬지만, 사교육임을 대외적으로 선언하고 있다고요. 국가가 나서서 말입니다. 도무지 이 엄청난 일들이 자율과 규제 철폐라는 미명하에 벌어져도 괜찮은 일인지 우선 궁금합니다.

국가가 나서서 공교육을 사교육이라는 괴물에게, 쿠데타세력에게 넘겨줬습니다.
하기는 사립형사립고 100개 만들어서 사교육 잡겠다는 정부에게, 영어 몰입교육으로 영어사교육 잡겠다는 교육당국에게 무슨 기대를 할까마는,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어제 [피디수첩]도 이 문제와 겹치는 주제를 다뤘더군요.
소위 MB물가지수의 포퓰리즘과 실효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 꼭지가 있었는데요. 상위층, 중산층, 하위층 가릴 것 없이 가계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항목은 '사교육비'였습니다. 계급을 초월해서 공히 1위였죠. 피디가 한 학부형에게 묻습니다(기억에 의존한 것이라서 정확한 인터뷰 내용은 아닙니다만, 대충 이런 풍경입니다).


피디 : 영어몰입교육은 좀 주춤하지 않았나요?
학부형 : 주춤, 주춤이라구요? 누가 그래요? 누가 주춤했대요? [.....]



그 뒤에 열변을 토하는 학부형은 상상에 맡깁니다.
질문한 피디가 오히려 당황하더군요.

스스로 '종이감옥'에 갇혀서, 공동체를 배우기 전에 '성공을 위한' 비교와 경쟁을 배우는 아이들. 이기지 않으면,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패배하고, 낙오하는 참혹한 군사문화, 아니 차라리 전쟁문화를 그렇게 스스로 내면화할 아이들. 학교현장에서 이제 노골적으로 '자율화'라는 이름으로 이런 야만의 풍경들이 펼쳐질 겁니다. 이제 전인격적인 교육의 이상은 엿장수도 사지 않을 골동품이 되었습니다. 그걸 당당히 이명박 정부는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성공'이라는 놀라운 마법과 주술로 아이들의 영혼을 갉아먹고, 가뜩이나 물가가 올라서 허리띠를 졸라메고 있는 대다수 서민들의 지갑과 가계경제를 갉아먹을겁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겼습니다. 그리고 그건 너무도 당연합니다. 0교시 수업과 방과후 심야 보충 수업에 지쳐서 돌아온 아이들은 '영어로 만든 우리동요'를 배우는 이효리(상상플러스)를 보면서 키득거릴테니까요.

문득 [베를린 천사의 시](원제 : 베를린의 하늘)에서 브르노 간즈가 영화를 여는 그 장면에서 읊조리던 시가 떠올랐습니다. 이 황망하고, 어처구니 없는 소식에 놀란 마음을 위로 받고자 찾았던 주신부님 블로그에서 '삶을 응시하며 노래하기'라는 글을 읽었기 때문인데요. 거기에 [베를린 천사의 시]에 관한 짧은 언급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가물거리는 기억을 붙잡고, 그 시, 페터 한트케의 시를 찾아봤는데, 정말 우연처럼, 엔디님 블로그로 저를 안내하더군요.

아이가 아이였을 때,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나는 왜 나이고, 네가 아닌가.
왜 나는 여기에 있으면서, 저기에 있을 수 없는가.
내가 아직 나이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는가.
언젠가는 나란 존재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아이였을 때 산딸기를 따러 높은 곳에 올라갔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낯선 사람 앞에서 쑥스러워했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창던지기도 했고,
그때 꽂힌 창이 지금도 흔들리고 있다.

- 페터 한트케, 아이가 아이였을 때… (Als das Kind Kind war...) 중에서 ( 출처 : 엔디, 글쓰다 )


소리 없는 붕괴와 말없는 아우성들    
지구가 무너지는 소리 들리십니까?
당신 욕망이 꿈틀거리는 소리 들리십니까?
당신 아이들이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당신과 내가, 우리시대가 만들어놓은 욕망의 얼개들 사이를 기어다니는 모습이 보이시나요?

너무 서두르지는 마세요.
앞으로 내내 듣고, 보실테니까요.

아, 그리고...
국민여러분, '성공하세요'  



* 관련글 및 팟캐스트
인터뷰 - 교육전문가 K누님
일제고사 단상 : 종이 감옥 속의 아이들


* 인용 및 참조
삶을 응시하며 노래하기 (주낙현)
아이가 아이였을 때: Wim Wenders《베를린 천사의 시》(엔디)


* 관련 동영상
피디수첩, 'MB 물가지수'(2008. 4. 15. 일 방송분) 중 '대학등록금' 부분

2008/04/16 09:03 2008/04/1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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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y 
wrote at 2008/04/16 10:33
점점 애낳기가 무서워지는 세상이에요...
민노씨 
wrote at 2008/04/17 01:31
... 그러게요. 무섭습니다.
wrote at 2008/04/16 11:10
이제 살아가는 데 달콤한 것들은 기득권들의 점유물이 되는 것일까요?
저도 어제 뉴스를 보고 참담하더군요. 총칼없는 전쟁시대...일본 영화 배틀로얄이 생각나더군요.
민노씨 
wrote at 2008/04/17 01:32
그 와중에 많은 대다수 서민들만 죽어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점점더 '선택'할 수 없는 환경으로 몰아넣는 것 같아요.
wrote at 2008/04/16 13:11
민노씨가 흥분하시는 모습을 오랫만(?)에 보게 되네요.
저도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할말이 없네요.

정부 정책이니...
그냥 이렇게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란 생각도 듭니다.

자율을 빙자한 업악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암울하군요.

누구말대로
"아니 그럼 학원 안보내면 되지 않냐?" 라는 말도 떠오릅니다.

세상을 등져야 하나....
고민중이랍니다.
민노씨 
wrote at 2008/04/17 01:34
정말 착잡하네요.
너무 황당하고, 너무 엄청나서 오히려 치솟아 오르는 분노가 가라앉는 느낌입니다.
말씀처럼 자율을 빙자한 억압이라는 생각입니다.
wrote at 2008/04/16 15:16
정말 이민이라도 가야 나의 자녀에게 나의 짐을 다시 지우지 않을까 고민이 되게 만드는 세상입니다.
민노씨 
wrote at 2008/04/17 01:34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느낌입니다...
wrote at 2008/04/16 16:00
아나ㅆㅂ 내생일 전날에 이딴일이 있어서야..
민노씨 
wrote at 2008/04/17 01:34
그럼 오늘 생일이시군요!
생일 축하드립니다. : )
wrote at 2008/04/16 18:59
미쳐가는 대한민국.. 딱 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듯..
민노씨 
wrote at 2008/04/17 01:35
그러게요.
광풍이 부네요..
wrote at 2008/04/16 20:45
대한민국을 떠나 가게 하려는 정책이 아닐런지라고 심히 생각이 듭니다-_-
민노씨 
wrote at 2008/04/17 01:38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ㅡㅡ;;
오스왈드 
wrote at 2008/04/16 22:27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자유롭게 총기 소지를 할 수 있었으면 촣겠습니다.
민노씨 
wrote at 2008/04/17 01:38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농담이시죠? ^ ^
wrote at 2008/04/16 22:37
예전에 느낌표란 프로그램에서 애들 아침밥먹고 학교 다니게 하자면서 캠페인을 벌이자 온 나라가 떠들썩해지면 마치 정말 그간 그런 건 몰랐다는 듯이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젠 아예 그냥 대놓고 막나가는군요. 그 때 호들갑을 떨었던 이들은 지금 다 무슨 생각을 하며 세상을 살아가는지 궁금하네요.
민노씨 
wrote at 2008/04/17 01:36
정말 막가자는 분위기인 것 같네요. ㅡ.ㅡ;
kk 
wrote at 2008/04/16 22:44
명언, "답이 없다." 는 이런 때를 위해..!
민노씨 
wrote at 2008/04/17 01:38
그러게요 답이 안보이네요...
지나가다 
wrote at 2008/04/17 00:22
뒷부분은 선동성 말들이 많아 글은 앞에만 읽었지만 .. 한가지만 글 쓰신 분께 묻고 싶습니다. 그럼 노무현 정부 때의 교육 정책이 좋았고 그땐 사교육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논술 내신 강화로 수능 뿐만 아니라 논술 내신 사교육까지 부채질 한 것이 지난 정부의 교육 정책이었습니다.

지난 정부의 가장 실패한 정책 중 하나가 교육정책이었구만 ..
민노씨 
wrote at 2008/04/17 01:37
왜 갑자기 노무현이 나오는건지요?
그리고 앞 부분만 읽으셨다면서 뒷부분이 선동적이라고 말씀하시는건.. ^ ^;
궁예의 관심법을 글읽기에 도입하셨나요?
저도지나가다 
wrote at 2008/04/17 02:24
대학생들 imf이후로 취업이 어려워지고 학교에서부터 경쟁에 내몰리니 보수화되고 정치에 관심없게 되었다는데 옛날의 3S이런거 대신 이제 경쟁으로 정신없게 해서 국민을 무뇌 로봇으로 만들어 보려는 고도의 계획일수도.
민노씨 
wrote at 2008/04/21 01:35
무뇌 로봇..
'성공'이라는 철학도, 공동체도, 어떤 구체성과 삶에 대한 지표도 없는 이상한 이데올로그가 압박적으로 강요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성공해서 남는 건 말씀처럼 '무뇌 로봇'들이 아닐까 싶어요.
wrote at 2008/04/17 08:11
아주 그냥...
점점 더 창의적인 발상을 없애는 수업으로 변해가겠군요...
나라 패망하는 지름길... 에휴
민노씨 
wrote at 2008/04/21 01:36
말씀처럼 창의적 발상을 피어나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점점더 무슨 경쟁로봇들을 만들어가는 기계식 교육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아거 
wrote at 2008/04/17 12:12
뉴스데스크를 보니 교육도 1%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네요. 이놈의 정부는 1% 정부..

뉴스에 나온 학교의 교장도 아주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이름도 서울대연고대반이라니...황당합니다.
민노씨 
wrote at 2008/04/21 01:38
수면 아래 있던 욕망들을 적극적으로 자극하고, 그 욕망의 아수라장 같은 경쟁시스템으로 모든 학생들을 몰아넣고, 학부모들을 고문하는 '고문현장'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닭네임 코리아'문제는... ㅡㅡ;;;
http://feeds.feedburner.com/~r/gatorlog/~3/273922370/

정말 닭대가리 짓을 하는 것 같다는 의심을 지울 길 없네요.
wrote at 2008/04/17 14:53
정부부터 규제를 좀 해야 하겠군요, 덕택에 좀 일찍 태어난 것을 억울해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_-a
민노씨 
wrote at 2008/04/21 01:38
그런 정부여당이 과반을 차지했으니...
정말 답답하네요.
기계도시 
wrote at 2008/04/17 17:18
4월 19일 토요일 오후6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학교자율화 반대 촛불시위한답니다!!! cafe.naver.com/no2mbedu
민노씨 
wrote at 2008/04/21 01:39
성공리에 마치셨기를.. : )
meson 
wrote at 2008/04/17 20:05
혈압이 올라서 이번에 "토"다는 것은 Pass 합니다.
민노씨 
wrote at 2008/04/21 01:39
저도 혈압상승입니다. ㅡ.ㅡ;;
wrote at 2008/04/18 08:57
페터 한트케의 시를 구글링해봤습니다:

Lied vom Kindsein 독일어 원문
http://www.wim-wenders.com/movies/movie ··· rman.htm

Song of Childhood 영어 옮김
http://www.wim-wenders.com/movies/movie ··· hood.htm

어린 시절의 노래 한국어 옮김
http://cafe140.daum.net/_c21_/bbs_searc ··· zzzzzzzz
민노씨 
wrote at 2008/04/21 01:40
알려주신 웹페이지는 둘러봤습니다. : )
정말 고맙습니다.
wrote at 2008/04/19 02:49
이런 몹시 우울한 소식의 끝에 제 포스팅이 연결되는 게 참 그렇습니다 ^^; 아내에게 이 뉴스를 전했더니 한숨만 쉬더군요. 머리카락 하나씩 셉니다. 서로 마음 단단히 먹고 살자고 했습니다.

다만 올려주신 한트케의 시로 다른 마음의 창을 열어 볼 수 있어서 위안이었습니다. 민노씨, 엔비님 고맙습니다.
민노씨 
wrote at 2008/04/21 01:41
그러셨군요...
주신부님 블로그는 지친 마음에 위안과 위로를 전해줘서요.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민노씨 
wrote at 2008/04/24 00:57
* 관련 동영상 보충 : 피디수첩 'mb물가지수 중 대학등록금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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