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미술개념을 완전히 뒤집는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함으로써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르셀 뒤샹은 프랑스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인 블랭빌에서 태어났다. 뒤샹의 집은 미술가인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집안 전체에 예술적 기운이 가득했으며, 이로 인해 뒤샹은 어릴 적부터 예술적 기질을 키울 수 있었다.
1904년 학업을 마치고 파리로 간 뒤샹은 본격적인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풍자화가로 활동하였으며, 이후 세잔1과 야수주의, 상징주의, 입체주의,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만들었다. 이러한 영향을 종합해 뒤샹은 1912년 새로운 형식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라는 작품을 그리지만, 입체주의자들은 이 그림이 너무 미래주의적이고 정숙하지 못한 우스꽝스러운 그림이라며 무시했다. 이 때부터 뒤샹은 어떤 그룹에도 끼지 않고, 자기 스스로에게만 의지하게 된다.
1912년이 끝나갈 무렵, 작품을 더 많이 제작하고 일자리를 얻는 것을 목표로 삼은 뒤샹은 친구 피카비아2의 소개로 비교적 자유로운 직장인 생트 주느비에브 도서관의 사서로 취직하였다.
뒤샹은 도서관에서 2년 동안 사서로 지내면서 화가의 무리에서 벗어나 학자의 영역으로 발을 들였다. 뒤샹은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과학이나 공업, 혹은 문학을 새로운 각도로 보려고 했다. 특히 그는 당시 과학적 사고방식의 기반을 흔들었던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분야를 탐구했다. 이 때 뒤샹은 새로운 개념미술을 개척한 대가로 성장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e)를 만난다.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푸엥카레는 “과학은 사물 그 자체에 다다를 수 없다. 단지 사물간의 관계에만 닿을 수 있다.”며, 물질과 작용을 지배한다고 믿었던 법칙이 단지 그것을 이해하는 정신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기존의 이성적인 과학의 개념을 뒤집어 버리는 주장을 담은 푸엥카레의 책을 도서관에서 만난 뒤샹은 푸엥카레의 사상에 깊이 빠져들어 갔다. 그리고 뒤샹은 푸엥카레의 논리를 미술에도 도입하였다.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서 인정되는 기존의 예술에 반기를 들고,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개념미술적 태도를 확립한 것이다.
이후 뒤샹은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면서, 조각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세 가지 표준 정지기>란 작품을 만들었다. 하나의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의 적용, 그 결과로 생긴 ‘법칙’을 보여주는 상자였다. 이를 시작으로 뒤샹은 기존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도구들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특히 그는 레디메이드(readymades : 기성품)란 이름으로 다양한 작품을 생산했다.
뒤샹은 1917년 뉴욕 <독립미술가전>에 ‘R. Mutt'라고 직접 사인한 남성용 소변기 <샘 Fountain>을 출품했다. 이 작품은 그의 레디메이드 중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비도덕적이고 천박하다는 이유로 전시에 거절된 뒤샹의 변기는 기존의 예술 개념을 완전히 전복시키고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낳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정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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