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연은, 변절한 적이 없다
1864년 태어나 1921년 세상을 떠난 장지연이 4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사 명단에 들어갔습니다. 장지연을 두고 항일에서 친일로 변절했다고 보는 이들이 많은 편이지만, 사상 측면에서 보면 처음과 끝이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바뀌었다고 보는 근거는 바로 1905년 을사늑약을 비판하는 장지연의 ‘명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황성신문>에 실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이렇게 일본에 맞섰지만 나중에 경술국치를 겪고 합방이 되니 일제 통치에 협력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장지연은 처음부터 ‘친일’이었습니다. 장지연이 사회진화론과 인종주의에 빠져 있었음은 그동안 우리 역사학계가 밝혀놓은 뚜렷한 사실입니다. 러일전쟁이 한창인 때인 1904년 장지연은 5월 6일치 <황성신문> 2면 논설에서 ‘백인종에 맞서려면 황인종은 일본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본과 러시아의 치열한 전쟁이 참담해서 세계의 겁살운과 동포의 액운이 되고 있다.”, “북경에 달려가 청나라 조정의 뜻을 (중립에서) 돌려 동양 정세를 부지하고 황색 종족을 보전하려고 한다.” “우리가 연합 대동해 평화를 유지하면 반드시 황색인종 수억 사람이 모조리 은혜와 복됨을 맞이하게 하며 동양의 크고 작은 여러 나라에게는 안녕을 지키게 해 줄 것이다.”
"이토 후작, 왜 우리를 속였느냐!"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 당하자 사흘 뒤 시일야방성대곡을 발표하는데, 일본(정확하게는 이토 히로부미)이 약속을 어긴 데 대한 비판 측면이 강하답니다. 주요 내용은 ‘동양 삼국 안녕 주선’과 ‘독립 방략 권장’ 약속을 왜 깼느냐, 입니다. 전문(全文)은 이렇습니다.
“지난날 이토 후작이 한국에 오니 어리석은 우리 국민이 말하기를, 평소 동양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한 인물이라 오늘날 반드시 우리나라의 독립을 굳게 세울 방략을 권하리라 하여 관민이 크게 환영하였더니, 세상에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많도다.
천만 꿈밖에 5조약이 어디로 제출되었는가. 조약은 비단 우리 대한뿐 아니라 동양삼국의 분열조짐을 만들어 내는데 후작의 처음 의도가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해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의(聖意)가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줄 이토 후작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슬프도다. 개돼지만도 못한 정부의 대신들이 영리를 바라고 위협에 겁먹어 놀랍게도 매국의 도적을 지어 4000년 강토와 500년 사직을 바치고 2000만 국민을 노예로 만드니 저들 외부대신 박제순과 여러 대신은 깊이 책망할 가치도 없다.
명색이 참정대신으로 정부의 수석인 대신은,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궁색하게 면하여 명예를 구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가. 청음 김상헌의 서류를 찢는 통곡도 동계 정온의 할복도 못하고 살아서 세상에 서니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상 폐하와 2000만 동포를 대하리요.
분하도다! 우리 2000만, 노예가 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기자 이래 4000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그러니까 식민 지배 강화를 위한 조치인 ‘외교권 박탈’이나 ‘통감부 설치’ 같은 을사늑약의 주요 내용에 대한 비판이 없습니다. 반면 이토가 약속을 어긴 데 대한 통박이 앞서 있습니다. 물론, ‘시일야방성대곡’에 이른바 ‘역사적 의의’가 없다고 하려는 뜻은 없습니다만.
박노자는 <우승열패의 신화> 361쪽에서 “안중근, 장지연, 이준, 이승만, 윤치호 등 인종론 입장에서 일본 승리를 기뻐하면서도 ‘인종적 단결’보다 대한제국의 현실적 ‘국권’을 더 중시하는 지식인들은 을사조약 강제 소식에 충격을 받아 인종론 사고를 근본적으로 청산하지 못하면서도……약속을 ‘배신’한 일본과 이토를 혐오하는 반일로 전환한다.”고 했습니다.
이 일로 1906년 2월까지 64일 동안 감옥 생활을 해 놓고도 장지연은 그해 7월 7일치 <황성신문>에서 논설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함께 독립을 유지하며 서로 지팡이가 되니 일본 또한 영원히 보전된다.”고 한.중.일 삼국 동맹을 긍정하는 논리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인종주의와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인 사람은 장지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안중근도 그랬고 나중에 무장독립투쟁에 나선 신채호와 박은식 같은 인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끝은 같지 않았습니다.
장지연은 대한자강회를 조직했다가 해산되자 러시아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로 1908년 망명을 떠납니다. 망명 생활 또한 뜻처럼 되지 않자 1909년 10월 진주로 와서 우리나라 최초 지역일간지 <경남일보> 주필을 맡습니다. 그러다가 경술국치를 당한 다음 매천 황현의 절명시(絶命詩)를 싣습니다.
1915년부터 다시 친일 기사 생산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았으면 그럭저럭 좋았으련만, 장지연은 1915년 새해 첫날부터 일제 식민 통치를 아름답게 꾸미는 글을 발표합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그해 1월 1일치로 실린 글이 그렇습니다.
제목은 ‘조선 풍속의 변천’입니다. 장지연은 여기서 “조선총독부가 시정 5주년 기념으로 물산공진회를 마련했는데 이는 조선총독부가 혁구쇄신(革舊刷新)하여 쓸모없는 것을 없애고 농공실업을 장려하여 진보한 성적을 모두 수집하여 진열한 것이다.”고 칭찬합니다.
장지연은 여태 <매일신보>가 여러 차례 초청했으나 1914년 10월에 ‘기신보사(寄申報社=신보사에 준다)’라는 글을 써서 거절하기까지 했다고만 알려져 있었으나 바로 두 달 뒤에 이렇게 <매일신보>에 글을 싣기 시작했습니다. 좀 가볍게 이르면, 변덕이 심해 보입니다.
장지연은 이어 같은해 4월 21일치 <매일신보> 만필소어(17)-신구학(기)에서 “(아시아를 제패한 전술로 보더라도) 일본을 동양의 독일이라 일컬어도 지나치지 않다.”, 1916년 9월 16일치 만록-지리관계(5)에서 “(일본은) 동양의 패왕이다.”라 했습니다.
1917년 6월 8일치 ‘봉송이왕전하동상(奉送李王殿下東上)’-동상(동쪽 위에 있는 일본)으로 이왕(순종) 전하를 보내며-에서 “(순종의 일본 방문으로) 내선 인민이 친목으로 사귀어 장애를 풀어 없애고 일체 간격이 없다.”, “일선(日鮮) 융화의 서광이 빛나리.” 하고 찬양했습니다.
이밖에도 연세대 사학과 교수 김도형이 2000년 6월 발표한 논문 ‘장지연의 변법론과 그 변화’(<한국사 연구> 109집)에 따르면, 장지연은 ‘황인종과 백인종’ 전쟁에 대해 <매일신보> 1915년 7월 3일치(‘구주(歐洲) 전쟁의 기인’)와 1918년 3월 19일치(‘황백인종전’)에서 말했습니다. 또 <매일신보> 1916년 6월 8일치 ‘시사소언’에서도 “일본이 마땅히 아시아의 맹주가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장지연이 못 빠져 나온 인종주의.사회진화론
박노자는 장지연을 다른 개신 유학자와 대조합니다. <우승열패의 신화> 400쪽에는 “결국 이(개신 유학자) 그룹은 정치적으로 분열했다. ‘황인종과 백인종 사이의 인종전쟁’이라는 구도에 매료된 장지연은 윤치호와 마찬가지로 일본 식민 당국에 협력하는 데 동의했다. 그렇지만 박은식은 신채호와 마찬가지로 중국 망명을 택하여 망명 독립투쟁의 핵심 인물이 되었으며,”라 했습니다.
장지연은 무덤이 마산에 있습니다. 장지연의 친일 행적은, 2003년 3월 이전에는 적어도 대중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해 3월 1일과 6일과 8일치로 <경남도민일보>가 세 차례에 걸쳐 보도함으로써 널리 알려졌습니다. 물론 조중동뿐만 아니라 서울에 있는 매체들은 그 때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만.
당시 기사와 메모를 모으고 그 뒤에 생긴 자료들까지 챙겨서 한 번 정리를 해 봤습니다. 이렇게 하고 보니 어느 정도는 ‘빛’과 ‘그림자’가 같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2005년에는 두 차례 토론회에 나가기도 했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이 명백한 친일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빛’이 너무 세었고 또 뜨거웠나 봅니다.
저는 장지연을 불쌍하게 여깁니다. 장지연은 자기 한 몸 잘 살기 위해 친일한 여느 친일인사들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실제로 부귀영화를 누리지도 못했습니다. 그이는 무어랄까 결국 신념이 잘못돼 인생을 조졌습니다. 1921년 술에 찌들어 숨을 거둘 때까지 사회진화론과 인종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당시 시대 흐름이 그랬던 탓도 클 것입니다.
결국 책임은 모조리 개인에게 돌아가고 맙니다. 둘러싼 조건은 그야말로 조건일 뿐입니다. 장지연은 왜 박은식이나 신채호처럼 변신하지 못했거나 또는 안했을까요? 무장독립투쟁까지 나아간 박은식이나 신채호도, 친일로 일관한 장지연과 마찬가지로 양반 출신 개신 유학자인데 말입니다.
장지연 주필이 1910년 10월 10일치 <경남일보>에 실었다는 매천 황현의 절명시(絶命詩)를 가져와 봤습니다. 당시 장지연도 당연히 비감(悲感)에 흠뻑 젖었을 것입니다. 장지연의 삶을 보면서, 매천 황현이 목숨을 끊으며 지었다는 이 시의 표현대로, 식자인(識字人) 노릇이 쉽지 않음을 한 번 더 절감합니다.(전체는 네 편인데 첫째와 셋째만 옮깁니다. 다른 둘은 마음에 들지 않아 뺐습니다.)
난리를 겪다 보니 머리 온통 허예졌네
몇 번이나 목숨 끊으려도 이루지 못했으나
오늘에는 반드시 이루어야 하고 보니
가물대는 촛불이 아득히 하늘에 비치네.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한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구나
가을 등불에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세상에 글 아는 이 노릇 어렵고 어렵구나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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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조두남·장지연도 친일파 "이를 어쩌나"
Tracked from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2008/05/03 10:27 삭제가곡 <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과 작사자 윤해영,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장지연 <경남일보> 주필 등이 친일파에 포함됐다. 조두남의 경우 마산시가 '조두남기념관'을 건립하려다 시민단체와 언론의 거센 반발로 '마산음악관'으로 이름을 바꾼 바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가곡 <선구자>를 상징하는 각종 조형물이 마산에 남아 있어 철거논란이 격화될 전망이다. 또 장지연도 한동안 언론인의 표상으로 경남지역 각 신문사 기자회가 매년 신문의 날(4월 7일)에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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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애국가 정통성 시비 이제는 끝내야 한다
Tracked from 오선지위의 딱정벌레 2008/05/03 11:26 삭제예전 "애국가"교체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지금 우리가 국가라고 하는 "애국가"가 정통성 시비가 계속되고 있었다. 안익태 친일명단수록으로 애국가 교체 논란이 되고 있다. 여러가지 의견이 있다. 그중 안익태의 애국가(글에 나오는 노동일교수는 노동은교수의 오기라 보인다.)는 안익태의 의견을 적극 옹호하고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가(國歌)를 바꿔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2006년 중앙대 노동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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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단순한 친일 행적 기술만으로는 곤란하다
Tracked from Don't Feel Sorry For Yourself 2008/05/03 14:10 삭제나라가 광우병, 대통령 등으로 인해 시끄럽다. 나도 광우병이나 대통령에 대한 글을 써보려 했으나 앞서 날카로운 시선과 해박한 지식, 객관적 자료들을 이용하여 좋은 글을 쓰신 칼럼니스트, 지식인, 블로거들이 많이 있기에 글을 읽고 댓글을 다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촛불집회에는 참가하려 했으나 파리목숨과 같은 비정규직 학원강사의 처지라 마음은 거기다 얹어 놓았다. 시간이 나면 나도 나가볼 생각이다. 이번에 할 이야기는 친일인사명단에 관한 것이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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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친일문제는 민족문제가 아닌, 현재와 미래의 문제이다!
Tracked from To be, or not to be 2008/05/03 17:36 삭제2008년 4월 29일 오전 10시, 프레스 센터 19층에서 4778명의 친일파 명단이 발표되었습니다. 광복이 된지 올해로 63년이 지난 지금에야 완성된 명단이 발표 되었습니다. #1. 가장 재미(?)있는 반응은 청와대에 살고 있는 분의 반응 입니다. 李대통령 "친일문제 공과 균형있게 봐야" <연합뉴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그 발언과 같이 이 대통령은 특히 "이런 저런 과거사 청산관련 위원회 분들이 주로 과거 정부에서 임명됐는 데 과거사 관련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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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반의 역사적 사실과 몇몇 논문의 텍스트 인용까지 반박의 여지가 없이 장지연의 공과를 명쾌하게 적시한 글이군요. 보면서 내가 배울점이 많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공과를 객관적으로보기 위해서는 그 주변사람들과 관련된 이해타산의 관점을 먼저 배제해야 할 것입니다. 안타까운 지식인이었으나 그로 인해 친일의 과가 치유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역사이고 이것이 인생인것 같습니다. 장지연 ... 그를 오늘 제 가슴에서 조용히 묻었습니다.,
훌륭합니다 ^^
헐-_- 그럼 장지연을 반일의 대표적 주자로 꼽는 우리 교과서는 완전히 틀렸다는 건가요@_@
정말 잘보았습니다. 고등학생인데 제가 봐도 이해가 쏙쏙되고.. 새로운 사실이기도 합니다. 국사라는 과목에 별 흥미를 못느끼다가 고3이되어 배우는 근현대사에 뭐랄까 빠져들었습니다. 손대기도 어려워 보이는 많은 문제들이 근현대사와 연관이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글 많이 써주세요.
데빌루스//
장지연을 반일의 대표적 주자로 꼽는 교과서가 어디있죠?
국정교과서는 을사늑약때 시일야방성대곡 발표 했다는 내용만 있을텐데 ㅡ.ㅡ?
반일행동했다고 나오지는 않는걸로 아는데요
혹시 뉴라이트 국사교과서 보시나요?
뉴라이트 교과서 읽어보고 말씀하시죠? 뉴라이트 교과서에도 그런 소리 없거든요.
본관은 인동(仁同). 호는 위암(韋庵)·숭양산인(崇陽山人). 1894년 진사가 되었고, 다음해에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의병의 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썼으며, 1896년 아관파천 때에는 만인소(萬人疏)를 기초하기도 했다. 또한 같은 해 사례소(史禮所) 직원으로 〈대한예전 大韓禮典〉 편찬에 참여, 내부주사(內部主事)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총무위원이 되었다. 1899년 〈시사총보 時事叢報〉 주필을 맡아 언론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1901년 황성신문사(皇城新聞社) 사장이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때 〈황성신문〉 사설에 〈시일야방성대곡 是日也放聲大哭〉을 실어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만천하에 알렸고, 이로 인해 일본경찰에 체포·투옥되었다. 1906년 윤효정(尹孝定) 등과 함께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를 조직했으나 이듬해 강제해산되었고, 1908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했다. 이곳에서 〈해조신문 海潮新聞〉의 주필을 맡았다가 신문이 폐간되자 각지를 방랑하다 귀국하여 1909년 진주의 경남일보사 주필로 취임했다. 이듬해 8월 29일 〈해조신문〉에 황현(簧炫)의 〈절명시 絶命詩〉를 게재함으로써 〈경남일보〉가 폐간당했고 그뒤 고향에서 칩거했다. 〈유교연원 儒敎淵源〉·〈대한신지지 大韓新地誌〉를 비롯한 수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1962년 건국공로훈장 단장(單章)이 추서되었다.
이게 다음에 나와있는 간략 인데 위에 블로그 포스트가 더 잘 만들어 진것 같네요 ㅡ.ㅡ;;
고맙습니다. 칭찬해 주셔서요. ^.^
어쨌거나, 끌어오신 내용 가운데 장지연이 <해조신문>에 황현의 절명시를 실었다는 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 같은데요. 매천은 1910년 음독 자살했습니다.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이고요. 딴지 걸려고 적지는 않았으니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작금의 미국에 대한 대한의 식자들의 태도는 장지연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을것 같은데요...
이건 뭐 대통령부터 아부 일색이니....
참 어려운 일입니다. 혼란한 사회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일..
친일지식인이란 딱지 떄문에 곱게 보이진 않지만
마찬가지로 이런 혼란스런 시대에 갈피를 못잡고 있는 우리들 입장에선
100년전 저 사람의 고민자체가 공감 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러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장지연씨는 정치적인 기호적 측면에서 친일을 한것이라 배웠었는데, 자신의 이념을 바탕을 둔 친일말입니다.. 오늘날에도 친중, 친미 있듯이,
장지연씨도 정치적인 기호의 친일이 아닐까 했는데요. 이 글을 보니 절반은 맞은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군요.
//고니만쉐
고니님.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저는 이제 30줄입니다만 제 초중고~시절에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으로 민족혼을 깨운 그런 인물로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항일의 대표주자라던가 그런 표현은 없었으나 그당시 그 교과서(그 당시 국사는 국정교과서 한 종류였습니다)로 배운 사람들 대다수가 그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장지연에 대해서 너무 편파적인 내용만 실려있네요. 우리나라의 교과서도 문제점이 많지만 그렇다고
장지연이 친일파의 행적이 지워지는것은 아니죠
실제로 제가 알기로도 을사조약 전까지만 해도 서양세계에 대한 반감으로 우리가 독립지사나 항일계몽운동가로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동아시아의 단결 운운하며(단어 선택이 좀 껄끄럽긴 하지만)일본을 지지했다고도 하네요. 조금 관련없어보이지만 최초의 조선 영어 통역관이자 YMCA의 수장이였던 '윤치호'역시 서양의 백인에 대한 동경이 강했으며 처음에는 미개한 '동양인'인 일본에 의한 지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처음 일본에 대하여 항일(무력활동등을 지칭하는게 아님)운동(증거;105인 사건 연루,게몽운동등)운동을 펼쳤으나, 후에는 어중간한 입장으로 회색인에 가까운 성향을 띄게된다는군요.
(훗날 친일파로 변모)
청교도적인 입자으이 백인에 대하여 거의 맹목전인 찬양을 하였으며(이때문에, 만약 백인국가에 대한 지배였다면 열렬히 환영하였을거란 의견도.)또한 의외로 조선 내에서 세계정세에 가장 밝았던지라,
1919년 기미독립만세운동 당시에 미국에 외교활동을 해달라는 말을 세계열강들이 조선의 독립에 관심이 없음을 파악하고 '낭만주의적인 환상'으로 치부하며 제일가는 영어구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묵살해버리죠. 일본의 근대화개발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도 햇지만 나중가면은 백인들에게 겪었던 차별로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이기기를 바라거나 창씨개명이나 YMCA 일본화에 거듭 앞장 선 인물이기도 하죠.
친일파 맞긴 한데 성향 자체는 애매모호한 인물. '윤치호'
우연히 타고 들어왔다 몇개글을 더 읽게 되었습니다. 쉽지않은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주라는 말은 못하겠지만 들러서 배우고 가겠습니다. 읽은 흔적을 남기진 않지만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좋은 글 많이 써주십시오..
와 글 정말 잘읽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를 배워서인지 더 재밌고 집중하게 됐네요.
올해 20살인 저 뿐만아니라 제 또래는 대부분 장지연이 친일은 커녕 오히려 항일지식인 이었다고 알꺼에요..
중학교 고등학교때 교과서에 장지연에 대한이야기는 을사조약에 한탄하여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사람이라고 밖에 설명도 안되있고, 국사선생님들께서도 친일을 했다던지....그런 언급을 하나도 안해주셨거든요..
좋은 정보를 알아갑니다. 앞으로 저같은 사람들도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들어 경남도민일보 논조가 괜찮더군요.^^
선생님의 글 잘읽었습니다 혹시 역사선생님이 시라든지 연구학자가 아니신지..
이렇게 자세하고 알기쉽게 장지연이라는 인물에대해 설명해놓은글을 본건 제가 여태
살아오면서 처음본거 같습니다. 제가 학교다닐때 배웠던 교과서에는 몇줄안되는 내용이지만
충분히 애국자 반일을 최초로 신문에다가 선포한 사람이라고만 생각되게 나오는데.....
아 이제와서 보니 전혀 사람이 다르게 보이는군요..장지연이 저런사람일줄은....
정말 잘봤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묻힐수도있는 역사라든지 사람들이야기 계속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군대도 다녀오고 나름 어느정도 지식이 있다 생각한 저였지만
오늘 역사라든지 인물에 대해선 참 미숙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것도 다 빙산의일부만
교육시킨 친일정책을 완벽히 청소하지못한 업보겠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아~ 너무 슬픈현실이네요, 현재의 나를 생각하면 그런 분이 있었기에...
현실의 살아있는 전~~ 광주 분들께선 어떻케 일어난 일을 가슴으로 어떻케 풀어야 할지
모순의 반복된 역사네요.. 제 대가리 수준으로선,... 후손에게 어떻케 역사에 대해서 설명할지... 쩝
자장면이나 우리의 왜곡된 현실이나 꼬인건 마짠가지네요. 결과는 맞있다일까요??!!
너무 좋은 블러그를 발견하여 기쁜맘으로 다른글들도 읽어보았습니다...두분 글 읽으면서 목마른 계절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하였답니다. 어찌 이리 속시원하게 글을 쓰셨는지...앞으로 팬이 되어 자주들르겠습니다. 건필하세요-^^!
고맙습니다. 자주 찾아 주시는 것은 고맙고 반가운 일이지만, 주신 칭찬은 제게 지나친 것 같아 부담스럽습니다영^^
박노자도 그렇고 좀 당시 상황을 너무 현재의 잣대로 판단한 단정같네요(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단지 일본에 기대를 걸었다는 이유로 그를 폄하한 박노자의 논리는 비역사적 편견의 극치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적극적 친일로 치부를 했거나, 아니면 신념적으로 서구 제국주의를 일차적인 위협으로 느껴 일시적으로 동아시아적 지역주의에 매료되어 일본(이나 중국)에 기대를 걸었다가 환상이 깨졌지만 망명가서 무장투쟁하지 않고 국내에서 일단 생존하여 (은둔 도피하지 않고)살아갔다면 현재의 맥락에서는 모두 똑같은 친일파로 아무런 역할을 평가받지 못하고 매도하는 것은 좀 지나친 건 아닌지...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공적과 과오를 함께 기록하자는 취지입니다.
2003년 3월 장지연의 친일 행적을 보도 매체에서는 처음으로 <경남도민일보>가 보도했을 때 이미,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에도 얘기했지만 아무리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한다 해도 그것은 <정상 참작> 수준밖에 안 되고 '친일 행적' 자체를 없다고 치부하고 묻어버릴 수는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학교다닐때 사탐중에서 근현대사를 제일 좋아했던 21살의 학생입니다. 지금도 근현대사에대한 관심은 여전하구요~ 제목만 보고는 우리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표적 항일인사인 장지연을 왜 친일로 몰아버리는 걸까? 하며 안좋은 마음으로 클릭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편협한 지식이 부끄럽네요^^ 언젠가 근현대사 선생님께서 안중근의사도 처음엔 친일이었다고 하는데 뭔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이 글을 읽으니 이해가 갈 것 같아요. 우리교과서도 학생들에게 정확한 지식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도 근현대사를 매우 좋아한 21살 청년입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가르켜 줄 부분이 많이있죠...
하지만 뉴라이트나 친일우파중심의 역사관이 등장한시점에
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군요...
진실: EU가 사람에게 식용금지 변형옥수수
현실: 5월1일 세계 처음 식용으로 수입.
진실: 미국식품안정청 FDA가 개 고양이 사료로도 금지한 광우병소, 치료물질없씀
현실: 안전하다고 먹으라는 정부.
일제 말살정책을 떠올리게하는
이명박정부를 국민손으로 끌어내리는수 밖에 없습니다.
국민 소환제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41850&
탄핵 국회교체 1달 남음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40221
국민투표제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43094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FTA비준이 통과되면 나라를 통체로 내준
을사늑약처럼 옛 전처를 밟게 됩니다.+++ 퍼트려주세요
잘 읽었습니다
현재 25이고 학창시절엔 국사과목을 가장 좋아했었는데요
장지연이 친일이란거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정말 부끄럽고, 또 많이 배우고 가네요
우리들 배울땐 그저 장지연 시일야방성대곡 황성신문 이렇게
외우기만 했지 더 자세히는 배우지 못했고 알려는 노력도 없었습니다
시험에 '이천만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이 지문이 나오면
그저 장지연-황성신문 이렇게 떠올려야만 하는 방식이었죠...
저의 무지를 깨트려주신것 고맙습니다
을사늑약전 지식인들이 인종론적으로 일본의 승리를 기뻐함은 오늘날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선전에 대부분의 아시아인들이 좋아했던 거라 비슷한 것 같네요.. 문제는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이 되면서 길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습니다...
대한독립을 이루고, 최초의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장기간을 두고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바로 잡는 노력을 했어야 하지만, 못했죠.. 첫단추를 잘못 꽤니 얼마나 시끄럽나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아마도 피폐된 강토와 국민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친일인사들에게 조국의 발전을 위해 과거를 묻지않고, 그대로 버려두었으니.. 사실 그러한 친일인사들은 그 당시 재산몰수하고 강제추방시키고, 대한민국의 시민권의 블랙리스트에 올려두고, 특별법으로 계속 진행했어야 하는데... 그 친일 인사들 그렇게 해도 아무런 할말 없습니다.
이명박대통령이 공과를 따져야 한다는데... 앞뒤 이것저것 가리면, 과연 누가 친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누가 있나요? 누구나 친일을 한 이유를 물어보면 대한민국을 위해서 희생했다라고 합니다. 공과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친일 인명사전으로 끝을 낼 수는 없습니다. 교과서를 개편해야 하고, 확실한 역사를 위해서 계속 발본색원하고, 닿지않은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교과서 편찬위원들도 대부분 일본침략기 시절에 교육을 받던 사람(현재는 잘 모르겠네요..)이니, 한국말은 긴장어라고 하죠.. 첫말부터 마지막말까지 끝까지 들어야 그 뉘앙스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빼고빼고빼고 하니,.. 장지연같은 사람이 왜? 친일인사야고 반문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지연은 처음부터 친일이었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시일야방성대곡 자체를 그가 쓴 것이 아니라고 보죠...
즉... 요즘처럼 언론시스템이 자리잡은 시절이 아니기 때문에
장지연이 편집장으로 있음으로해서 다른 사람(기자일 수도 있고 외부인사일 수도 있음)의 글을 자신의 명의로 내보냈다고 봅니다.
실제로 그 시절의 사설들은 상당수가 편집장 이름이나 편집부로 나갔어요.
반쯤 쓰다가 다른 사람한테 넘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 제가 정확하게 찾아내지는 못하겠습니다만.유근인가 하는, 장지연과 사돈이 되는, 같은 때에 황성신문에 있던 이가 그리 회고한 내용으로 지금 기억이 돼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황성신문을 편들었던 <대한매일신보> 1905년 11월 23일치 보도에 따르면, 장지연은 "왜 마음대로 신문을 배포해 치안을 방해했느냐."는 일제 순검 물음에 "내가 붓대를 잡은 지 7,8년에 세상 올바른 공론을 주장하다가 오늘 나라가 없어지게 된 관계 사실을 어찌 있는 그대로 말하여 우리 국민에게 알리지 않을 것인가. 볼지어다, <내가 쓴 것이란> 오히려 부족함이 있는 것이나, 소위 치안 방해란 일본 치안의 방해가 있다는 것인가." 대꾸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어쨌든 '시일야방성대곡'이 그의 작품임은 사실인 듯합니다.
사람의 일생을 가지고 친일을 논하는 것은 항일업적의 본래 의미 분석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친일이든 항일이든 해당 사안에 대해 논할 일이고 항일운동가의 일생에 친일이 개입된 이유와 의미에 대한 분석은 새로운 각도에서의 조명이지, 항일전력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장지연 선생의 항일은 항일활동이 지속된 기간에 한정해야 한다. 친일 행적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의 항일운동가 장지연은 죽었다. 친일 장지연은 정치적으로 전향한 사람이라 하겠다. 절에 다니다 교회에 다니게 된사람을 끝내 불교인이라 주장할 수 없고, 교회에 다니다 절에 다니게된 사람을 끝내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상하네요.. 전 올해 나이 31세인데.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때(10년~15년전) 국어시간에 장지연에 대해 배운바에 의하면
윗글 필자의 내용과 거의 유사한데.
시작은 항일이었으나 나중에 변절한 사람으로 국어선생님께 배운 기억이 납니다만..
지금에서야 그런 사실이 학계에서 인정이 된느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아서 다들 모르고 계섰던 것인지.
그 선생님께서 상당히 앞선 분이셨군요. 사실 장지연의 친일이 널리 알려진 건 불과 4~5년 전이었답니다.
그러게 말씀입니다. 안목이 뛰어나신 분인 것 같습니다.
이런 글은 어디서 다 구해오나여.?
진짜 대단해여. 지금껏 학교에서 배워왓던 모든내용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네여..ㅡ.,ㅡ
누가 진짜 내용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모르겟써여...
쓰벌.. 학교 다니는 내내 돈내고 배웟는데....아아아아아아.....!!!
제가 자랑 좀 하자면요. 2003년에 이것 취재할 때, 창원대학교 도서관과 경남대학교 도서관 등지에서 <황성신문>과 <매일신보> 축쇄판을 좀 대충 샅샅이 뒤졌습니다요. ^,.^
물론 앞서 연구한 이들의 성과가 없었다면, 저처럼 시간에 쫓기는 기자 나부랭이가 그렇게 뒤지는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2MB 국민저항권으로 몰아내자.........
◈국민 저항권이란 ◈
국가권력이 불법적으로 행사됐을 때, 그 복종을 거부하고
저항할 수 있는 국민들의 분노로 정권을 교체하는것을 말합니다
아고라 서명 부탁드립니다.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42112
우리 힘으로 직접 몰아낼 수가 있습니다.
많이 퍼트려 주세요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40221
↑현재 87만명 서명한 주소에요! 이곳도 서명해주세요!!!!
결국 이렇게 정리가 되네요 김주완 부장님 김훤주 선배님 잘보고 갑니다.
새로운 정보로군요.
시일야 방성대곡같은 글까지 쓴 사람이 어떻게 친일을 할 수 있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알려진 것과는 조금 달랐군요. 잘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국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것과 틀리지 않네요.
이래서 교사들의 자질과 역량이 중요한가 봅니다.
비밀댓글 입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신선한 내용이군요
장지연이... 애초부터 친일주의자였다..
친일 뉴라이트교과서가 나온 시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적지 않군요...
지금 이런시점에서도
좌파위주의 교육이다... 한나라당이 그저 한심스럽습니다.
자기들이 말하는 실증주의 객관주의 뉴라이트적인게 먼줄알고 떠드는것인지...
정말 대한민국의 후손들이 걱정되는 시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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