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찍 잠이 든 덕분에 새벽 3시 30분쯤 잠에서 깨어났다. 시차 적응이 잘 안되는 탓이다. 마루가 제공해 준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좀 뒤지다 보니 금방
콤튼으로 향하는데 영화 <브링 잇 온>의 이스트 콤튼 클로버스 고등학교가 떠올랐다.
아침을 다시 타코 벨 Taco Bell로 때우고 시장 조사를 위해 길을 떠났다. 오늘은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해 좀 멀리 가야만 한다. LA를 벗어나 남부의 콤튼 Compton 이라는 곳 까지 가야만 햇는데 콤튼은 이스트 콤튼과 웨스트 콤튼으로 나누어진다. 이 콤튼이라는 지명이 귀에 익숙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더니 커스틴 던스트가 주연한 <브링 잇 온 Bring It On>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속한 고등학교와 라이벌이었던 빈민가 고등학교의 이름이 이스트 콤튼 클로버스였던 게 기억이 난다. 혹시 나는 지금 미국 빈민가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
피코 역의 풍경. 인도와 철로, 플랫폼까지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 한국과 비교해 다소 위험해 보인다.
다운타운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걸어 올라가면 피코 Pico역이 나온다. LA의 전철, 지하철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철로와 인도, 플랫폼 사이에 어떠한 장애물도 없다. 전혀 안전해 보이지 않을 뿐더러 잘 하면 무임승차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철은 표 없이 타는 것이 가능한데 가끔 실시하는 검사에 걸리면 벌금이 무려 $250불이라고 한다. 이 점은 유럽과 똑같다.
플랫폼에 서서 어느 쪽으로 가야 콤튼이 나오는지, 표는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둘러보니 매표 자동 판매기가 보였다. ‘뭘 어떻게 해야 표를 얻을 수 있을까?’ 궁금해 하는데 오른쪽에서 흑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올라오고 있었고 왼쪽에서 젊은 흑인 여자애들 세 명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여자애들 중 가운데가 특히 예뻐 보였다.
“Hey, ladies. 안녕, 숙녀들~.”
외국을 혼자 여행할 때 중요한 것은 넉살이다. 나는 동양인이고 저 쪽은 세 명이니 좀 넉살 떤다고 해서 경계심을 가진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여자애들은 다소 당황하고 웃으며 걸음을 멈췄다.
“Excuse me. May I ask you some questions? 미안하지만 뭐 좀 물어봐도 될까?”
“Ok. What’s up? 알았어. 뭐가 궁금한데?”
가운데 여자애는 얼굴은 예뻤지만 발음은 형편없었다. 흑인 특유의 저음에 흘려버리는 듯한 새는 발음이라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How can I get to the Compton Station? 콤튼 역까지 가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Oh. This way. 이쪽 방향이야.”
“Ok. One more question. How can I get the ticket to the Compton Station? 알았어. 하나만 더. 콤튼 역으로 가는 티켓을 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메트로 티켓 자판기. 설명만 잘 따르면 쉽게 티켓을 얻을 수 있다. 메트로 데이 패스. $5에 전철과 버스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그들은 나에게 자동 판매기에서 표를 끊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될 수 있는 대로 데이 패스Day Pass를 끊으라고 했다. 데이 패스는 $5인데 하루 종일 대중 교통 수단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매우 유용한 정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고맙다고 얘기하고 헤어졌다. 헤어지고 나서 후회가 많이 됐다. 힐러리와 오바마 중 누굴 지지하는지 한번 물어볼 걸. 한 5분 정도는 농담 따먹기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아니면 아가씨들 사진이라도 찍어놓을 걸. 이 때까지만 해도 사진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때라 좋은 사진 찍을 거리를 많이 놓쳤다.
나중에 또 얘기하겠지만 미국인과 대화하면서 문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조금쯤 문법이 틀린다고 해서 얘기가 전혀 안 통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자기가 한 얘기를 잘 생각해 보고 나중에 틀린 점은 사전을 통해 확인하고 수정하면 된다. 일단 들이대고 보는 거다.
전철 안에는 흑인과 멕시칸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백인들도 보이기도 하지만 정말 가끔 있다. 버스도 마찬가지이다. LA에서 대중 교통 수단은 서민들이 이용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뭐 어쨌든 나도 서민이니까… ㅡ.ㅡ;;
미국에서 흑인들을 두려워하면 여행하기 힘들다. 적어도 내가 만나 본 흑인들은 대부분 친절했다. 지나칠 정도로. 유쾌한 농담을 즐기고 경쾌한 리듬으로 대화했다. 흑인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만 떨쳐 버린다면 미국 여행은 훨씬 즐거워진다. 멕시칸들도 마찬가지이다.
피코 역에서 10정거장을 가면 콤튼 역이 나온다. 배가 좀 아프기 시작했다. 전철에서 내려 화장실을 찾았는데 공중 화장실 같은 건 정말로 보이지 않는다. 절박한 심정으로 20분 정도를 헤맨 끝에 스타벅스로 들어가 용변을 해결하고 아이스 라떼를 하나 주문했다.
원하는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정신없이 헤매다보니 버스를 어디서 타야하는지 방향을 찾기가 힘들었다. 지나가는 백인 아저씨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액션 영화에 악당으로 나올 법한 외모를 지닌 아저씨였다. 머리는 벗겨지고 뚱뚱한데다가 앞니는 썩어 깨져 있었다. 하지만 엄청나게 친절했다. 100여 미터를 함께 걸어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미국에서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 힘든 점 중 하나는 버스나 지하철이 빨리 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스의 경우 오래 걸리면 20분, 지하철은 5~10분 정도는 기다려줘야 한다. 원래 나는 성질이 좀 급한 편인데 땅덩이 넓은 나라에 오니 의외로 느긋해졌다.
다운타운의 푸드코트에서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판매한다. 푸드 코트 내의 모습. 한국의 푸드 코트와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한국인들보다 두 배의 음식을 먹고 두 배로 살찐다.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오늘 하루도 무사히 시장 조사를 마쳤다. 다시 LA 다운타운으로 돌아와 푸드 코트 Food Court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국, 인도, 중국, 이탈리아, 하와이안 푸드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판매했다. 나는 중국 음식을 먹어보았다. 볶음밥과 볶은 국수, 그리고 볶은 고기 ㅡ.ㅡ;;
미국인들은 젊었을 때는 날씬하고 예쁘지만 나이가 들면 점차 몸이 뚱뚱해지게 된다.
미국 음식은 양이 많다. 한국에서 먹는 음식의 두 배라고 보면 된다. 나초스 벨그랑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음식을 남길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인들이 살 찌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듯 했다.
미국에서 이틀이 지나갔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LA를 여행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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