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전춘 별사> 다시 읽기
이제 <만전춘별사>를 현대어로 번역해보겠다. 이는 기존의 번역들을 참고하여 필자가 직접 해 본 것이다. <만전춘별사>의 번역은 시적화자의 성별, 수 등에 의해 다양하게 나타난다. 전반적인 주제 의식은 유사하나 세부 구절에서 차이를 보인다.
(현대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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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
얼음 위에 댓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얼어죽을망정 얼음 위에 댓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얼어죽을망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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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여자) |
정 둔 오늘 밤 더디 새소서 더디 새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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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여자) |
뒤척뒤척 외로운 침상에 무슨 잠이 오리오 서쪽 창문을 열어보니 복숭아꽃이 피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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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
복숭아꽃은 시름없어 봄바람에 웃는구나 봄바람에 웃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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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
넋이라도 님과 함께 살아갈 것으로 여기던 이 넋이라도 님과 함께 살아갈 것으로 여기던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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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
우기던 이 누구셨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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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여자) |
오리야 오리야 어리고 아름다운 오리야 여울은 어디 두고 못에 자러 오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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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
못이 얼면 여울도 좋은데 여울도 좋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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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
남산에 자리보아 옥산을 베고 누워 금수산 이불 아래 사향각시 안고 누워 남산에 자리보아 옥산을 베고 누워 금수산 이불 아래 사향각시 안고 누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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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여자) |
약든 가슴을 맞춥시다 맞춥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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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
아소 님하 원대평생에 이별할 줄 모르옵시다. |
필자의 현대어 역은 <만전춘별사>를 통상적인 의미의 시로 보지 않고 노래, 특히 합가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데 중점을 두었다.
<만전춘별사>는 문학 텍스트로서 지금은 언어 자료만 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구연(口演)되었기에 여기에 주목하자는 생각이다. 이는 시조와 같은 작품을 다룰 때에도 운율이 원래 시조창을 들을 때 살아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시조의 음보율이 허황된 것은 아니나, 미세하게 글자 수가 한두 자 씩 차이가 나는 것 때문에 문학 텍스트만 놓고 보았을 때는 엄격한 의미의 정형시라 부를 수 없다. 하지만 시조가 창으로 구연(口演)되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백이 하나의 박자가 되고, 글자가 두 박을 차지하며 교묘하게 악곡의 곡조에 맞아들어 간다. 시가 노래로부터 연유하여 운율을 지니게 되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노래 가사로서 활용되었던 것은 다시 노래로 돌아가야 그 본질적 가치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노래의 구조를 살펴보면 합창/여자 독창, 여자 독창/합창으로 되어 있다. 여성 화자 1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타난다고 보는 시각이나 남성으로 화자가 바뀐다고 보는 시각은 <만전춘별사>의 해석에 항상 무리수를 두게 하였다. 하지만 이처럼 원래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는 노래였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시를 그렇게 무리하게 읽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 3, 5연에서 합창은 시적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이 된다. 그리고 주인공인 여성이 거기에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2, 4연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성이 자기 자신의 신세, 혹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노래로 표현하면 합창은 주인공의 속내를 드러내는 일종의 ‘방백’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시상의 흐름을 생각해 보았을 때 더욱 신빙성을 가진다. 1연에서 시적 상황에 주어진다. 주인공 여성과 남성이 얼음 위에 깔아 놓은 대자리 위에 있다. 왜 그곳에 올라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곧 여성이 그 이유를 말한다. 밤을 보내기 위해서다. 두 사람이 나누는 사랑이 얼마나 애절하고, 절실한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얼음에 대자리라는 차가움에 차가움을 더하는 요소를 삽입함으로써 그들이 나눌 성애(性愛)의 뜨거움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밤을 ‘더디 새라’고 바라는 것을 보면 이 날이 마지막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별 전야다.
결국 님과 이별한 여인은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을 뒤척인다. 결국 잠에서 깨어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혼자 앉기에 감정을 겉으로 드러낼 필요가 없다. 이것은 합창이 대신한다. 노래는 부르는 사람들이 가사가 주는 상황과 정서에 공감했기에 부르는 것이다. 합창은 그녀의 마음에 감응한 듯 복숭아꽃의 웃음에 대해 말한다. 이는 비웃음일 수도 있고, <황조가>의 펄펄 나는 꾀꼬리들처럼 그녀의 처지와 대비되어 주인공을 더욱 슬프게 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합창으로서 그녀의 속내를 드러내는 형식에 있다고 하겠다.
이제 여인은 분연히 그를 잊기로 한다. 3연에서 여인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한다. 합창은 역시 그녀가 처한 시적 상황, 즉 내적 갈등의 양상이 어떠한지 먼저 배경설명처럼 들어간다. 죽어서도 함께 하자고 말하던 이에 대하여 노래하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의 현대어 역이 선행 연구자들의 것과 다른 점이 발견된다. 원문은 ‘넉시라도 임을 한ㅣ 녀닛景 너기다니’이었다. 뒷 행에서 ‘벼기시더니’를 ‘벼기시던 + 이’로 분석한다면 당연히 앞 행의 ‘너기다니’ 역시 ‘너기단(던) + 이’로 분석해야 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다. 이러면 뒷행에서 앞의 ‘여기던 이’를 여성 가수가 그대로 받아 부르기에 무리가 없다. 게다가 이것을 ‘여겼던’으로 굳이 바꿀 필요도 없다. ‘-던’이 이미 그 자체로도 과거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인공은 함께 있으리라 여기던 이, 그렇게 우기던 이를 원망한다. 이것은 임에 대한 질책일 수도 있고, 자책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 굉장히 고조되었다는 데 있다. 전자라면 자기에게 거짓말을 하고 떠나버린 임을 잊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고, 후자라면 어차피 떠나버릴 사람을 철석같이 믿었던 자신의 아둔함을 버리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어느 쪽이든 이제 그를 잊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4연에서 그는 다시 돌아온다. 안정된 ‘못’을 두고 ‘여울’인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그의 여성에 대한 태도는 야속하다. 오리는 철저히 남성을 상징한다. 이는 서양의 기호학에서도 똑같이 발견되는 부분이다. 오리의 주둥이가 가진 형태나 연못, 혹은 물가를 떠다니는 모습만 보아도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킨다. 이에 반해 물은 여성이다.
돌아온 남성에게 말한다. 어째서 너는 못이 상징하는 너의 아내를 두고 다시 나에게 왔냐고 말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주인공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주인공은 결혼과 같은 제도에 구애받지 않고 당당히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여성의 처지는 여울에 비유되며 이는 못에 비해 윤리적으로 떨어지는 신분처럼 들린다. 우리는 여성을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성에 개방적인 여성이며, 다른 하나는 이와 유사한 정서의 시조를 썼던 황진이처럼 기생이 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 여성의 위치는 사회 윤리에서 그의 아내에게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노래로써 표현되는 그녀의 삶은 상당히 성에 개방적이었던 고려에서는 어쩌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그를 원망하고, 질책하는 것 같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그렇지 않다. 그야말로 당당하다. 그가 돌아갔던 아내의 품은 ‘얼어’버렸던 것이다. 여성을 상징하는 물이 얼었다는 것은 더 이상 성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없는 대상이 되었다는 의미다. 이런 여성의 속마음은 겉으로 드러낼 수 없다. 그래서 합창이 필요한 것이다.
5연은 다시 그와 사랑을 나누게 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역시 합창으로써 시적 상황을 제시한다. 산에 비유한 잠자리를 펼쳐내며 그와 그녀가 같이 누웠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향각시가 여자를 의미하는지, 향이 나는 어떤 물체를 의미하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시적화자가 따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합창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기에 어느 쪽이든 관계없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말한다. 약든 가슴을 맞추자고 말이다. 가슴과 가슴을 맞추는 행위는 역시 성애(性愛)를 의미한다. 하지만 돌아온 그와의 사랑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 돌아간 아내에게 만족하지 못하여 나에게 왔기에 나는 아내의 역할을 그에게 하고 싶다. 그래서 주인공은 약(藥)을 든 가슴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와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상대방에게 약(藥)이 된다는 의미인지, 가슴에 어떤 약 성분을 바르고 사랑을 나눈다는 것인지, 실제로 약(藥)을 들었는지는 여기에서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그의 아내가 갖고 있었던 위치를 제대로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을 쟁취하고 승리한 그녀를 위한 6연이 마련되어 있다. 노래의 마무리다. 모든 사람이 두 사람이 이별 없이 사랑이 영원하도록 기원하는 합창을 한다. 아마 주인공도 함께 부를 것이다. 이는 2, 4연에서 보여준 창의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다.
<만전춘 별사>의 문학 교육 텍스트로서의 의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만전춘 별사>는 한(限)의 정서라는 말로 항상 약자의 입장에 서 있던 여성이 결코 그런 위치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노래다. 시적 화자를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으로 상정하지 않고 고려가요 자체가 노래로서 불렸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큰 무리 없이 이렇게 시를 읽어볼 수 있었다.
물론 이별의 아픔에 괴로워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당당했다. 겉으로 드러내놓고 자신에게 돌아왔음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노래에서는 ‘합창’이라는 형태를 통하여 사랑의 승리자임을 과시했다. 이런 모습은 현대 여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고전이 단순히 과거의 것으로서 가치를 지니지 않고 현대인들에게도 공감을 얻게 해야 한다면 <만전춘별사>는 여기에 매우 충실하다 할 수 있겠다. 고전이 현대에도 의미가 있는 방법은 둘 뿐이다. 하나는 어떤 시대에서든 통하는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 시대에서 재조명될 수 있는 가치를 띠고 있을 때다. <만전춘별사>는 후자의 입장에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는 꽤 중요한 부분이다. 고전문학을 가르쳐야 하는 근거 자체를 흔들려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 현 시대에서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측면에서 <만전춘별사>를 보자. 이것은 서두에서 언급했던 성(性)과 관련된 것이다. 6연의 짧은 시에서 주인공과 상대방이 사랑을 나누는 행위는 두 번 언급된다. 그러나 이 표현들이 결코 저속하지 않다. 물론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이 보았을 때에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으나 현 시대에 범람하고 있는 노골적인 성묘사들로 가득 찬 소설, 음악, 영화 등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야말로 점잖다. 그러나 읽는 이로 하여금 성적인 상상력을 자극하게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오히려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현대의 예술 작품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1연의 묘사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애(性愛)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절실한가,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인가,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는가를 표현한다. 땀으로 범벅이 된 남성과 여성을 보여주는 영화 장면보다 더 강하게 다가온다. 이는 성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청소년기 학습자의 문학적 상상력을 높여주는 데 굉장히 큰 효과를 발휘한다. 항상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되어 숨기고, 넘어가려했던 성(性)에 대하여 전혀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뜨거운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해낸 이와 같은 작품을 통해 학습자에게 성(性)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은 굉장히 유의미한 일이다.
5연 역시 마찬가지이다. 가슴을 맞춘다는 행위는 곧 성교를 의미한다. 그러나 <만전춘별사>에서 표현하는 행위는 단순한 애무를 넘어선다. 여인은 자신의 가슴을 그저 남성에 가슴에 맞대는 것이 아니다. 가운데에는 약(藥)이 있다. 이 약(藥)은 성행위라는 것이 곧 욕망의 충족으로서만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성교를 ‘사랑을 나눈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 약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으며 그저 성욕을 채우기 위해 성행위를 하고 있지 않음을 ‘쓰면서도 몸에 좋은’ 약(藥)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않은 청소년들이 성행위를 단순히 성욕을 충족시키는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아무런 의미 없는 섹스로 가득 찬 포르노를 접하며 자라나는 그들이 후에 성에 대하여 비뚤어진 관념을 갖게 되거나 혹은 철저히 성(性)으로부터 차단되어 자라나 부끄러운 것, 나쁜 것, 더러운 것 등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학의 기본 성질 중의 하나가 돌려 말하기다. 성(性)이 겉으로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라면 문학을 이용하면 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높은 수준의 비유와 상징을 통한 성애(性愛)를 아름다운 묘사하는 <만전춘별사>는 여기서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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