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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에 이은 또 하나의 아줌마영화’ 개봉 이후에도 결코 이 꼬리표를 뗄 수 없었던 <걸스카우트>는 시작부터 굉장한 오해를 사면서 줄곧 불길한 조짐을 보여 왔다. 결국 피한다고 피하고 늦춘다고 늦춰 길일을 고른다는 게 쟁쟁한 호적수(<쿵푸팬더>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섹스 앤 더 시티> 등)들과의 한판승부였다니 개봉 첫 주 주말 관객 동원 5위라는 성적은 정말이지 오호통재요, <걸스카우트>에 대한 엉뚱한 오해와 선입관은 새삼 더 얄궂게 다가온다.

그러나 <걸스카우트>는 <우생순>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 자리 잡아 그 스타일은 물론 뼈대마저도 여성영화나 아줌마영화의 적자이길 거부하는 영화다. 여성과 아줌마 캐릭터에서 시작해 여성영화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이 캐릭터들을 장르영화라는 영지에 뿌리내리려는 영화의 시도는 무척이나 새롭고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우생순>이 실화스포츠의 감동을 등에 업은 채 루저들의 분투기에 집중하며 아줌마 세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곁가지로 두르고 있는 데 비해 <걸스카우트>는 결코 여성의 영역에만 한정되지도 않을뿐더러 이를 끝까지 영민하게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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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 찌들대로 찌든 봉촌3동 4인방을 ‘돈가방 쟁탈전’이라는 장르영화의 틈바구니에 몰아넣는 이 특별하고도 야심찬 이종교배의 장은 처음부터 전혀 다른 아귀를 가진 톱니바퀴의 맞물림처럼 삐걱거림과 미끈한 맞물림을 반복하며 기묘한 화음을 만들어낸다.(때때로 불협화음을 내는 것마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하루하루가 고달픈 이 각 세대의 여성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떼인 곗돈에 향해 투지를 불사르다가 어느 순간에는 <델마와 루이스>의 영역을 잠시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까마득한 절벽을 향해 노란 봉고를 모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고달픈 일상으로의 복귀가 목표인 이 아이러니한 돈가방 스릴러는 무척이나 스타일리시하게 포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루저들의 영지마저 진중하게 훑는다. 코미디가 중심이지만 오히려 다른 어떤 영화보다 불편한 장면들을 곳곳에 배치하여 쓰린 현실을 잊지 않도록 배려(?)하며 이들 여성들에게 절대 과장된 힘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또 종국에는 한번쯤 울려야한다는 한국코미디의 강박증마저 걷어내고 쿨한 태도를 과시하기도 한다.

이런 기묘한 맞물림과 삐걱거림이야말로 <걸스카우트>를 이어나가는 중요한 축이다. <걸스카우트>는 전혀 다른 유전자를 면밀히 흩어놓은 후 마침내는 교배의 야욕까지 넘보는 영화로 루저나 ‘찌질리즘’, 혹은 아줌마나 여성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영화다. 이 영화의 유전자 지도에는 처음부터 익숙한 화법을 변주하려는 잘빠진 장르영화의 피가 짙게 드리우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는 루저와 여성이라는 익숙한 톱니바퀴에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불어넣는 중요하고도 특별한 요소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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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스카우트>는 분명 루저들의 분투가 중심을 이루고 또 여기에는 제2의 성 여성과 ‘제3의 성’ 아줌마를 향한 질척한 시선, 그리고 이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사건들이 면밀히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봉촌3동 걸스카우트 네 명의 여성이 잃어버린 곗돈을 찾기 위해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이 ‘돈가방 쟁탈전’이라는 장르영화의 틈새 속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캐릭터와 상황이 정립되고, 동시에 관객의 동의를 얻어가면서 이들은 돈가방 쟁탈전이라는 이색적인 영역에 점점 더 매진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촌3동 여성동지들은 여전히 생활인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주식하다 돈 날려 소박맞고 봉고차 운전하며 도시락집을 꿈꾸는 30대 이혼여성,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20대 여성,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수술비를 마련하는 40대 억척엄마, 백수 아들놈에게 맞고 살며 마트에서도 괄시받고 일하는 60대 여성은 영화 내내 이 굴레에 갇혀 있고 끝내 이를 벗어나지도 못한다. 또 곗돈 부은 몇 백만 원, 이 피 같은 돈을 찾겠다고 생활도 버리고 갖은 고생을 하건만 그들을 기다리는 전혀 뜻밖의 것이기도 하다. 다름 아닌 ‘억(億)’의 세계. 이들이 고작 몇 백 만원에 있는 용기, 없는 머리를 짜내 달려들었건만 그들이 쫓던 미장원 원장은 몇 십억 짜리의 세계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곗돈 몇 천만 원이 담긴 현금가방과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숫자만을 어렴풋이 증명하는 22억짜리 채권이 담긴 가방은 우습게도 이들에게는 전복된 가치를 띠면서 여러 그룹들을 어지러이 오간다. ‘셀프’를 운운하는 멋들어진 해결사, 채권 들고 튀려했던 사기꾼, 미장원 원장의 가면을 쓴 팜므파탈이 22억을 찾기 위해 아등바등할 때 이들이 원한 건 그저 자신들의 돈, 결코 패배자로 쓰러지지 않고 그저 생활인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신들의 정당한 몇 백만 원어치 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들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서 이 신묘한 세계에 한 수 행사하며 때때로 당하고 또 한순간에는 되갚고 마는 장면들이 유려히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이들이 생활인의 굴레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장점’을 끝내 수호하는 영화의 태도와도 일치한다.

속도감과 미려함을 더한 화면전환은 물론이고, 차종이 조금 생소하긴 하지만 여느 서스펜스극의 추격전 못지않은 카체이싱까지 선보이는 등 캐릭터에 비해서는 과하다 싶을 만큼 세련된 구성과 연출은 이들이 22억 채권을 마주한 것 같은 기묘한 분위기를 거의 그대로 나타낼 만큼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종반부 클라이맥스에서 돈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비눗물 위에 미끄러지고 뒤엉키는 악다구니마저 흥겨운 리듬을 곁들인 신나는 장면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 또한 이를 방증한다. 이상한 나라로 간 앨리스처럼 전혀 다른 세계에 간 4인방. 그러나 이곳은 이들 캐릭터에 의해 서서히 이들의 색으로 물들 수밖에 없다. 큰돈에 혹해 배신한 여성 하나가 덩그러니 남겨지지만 이 역시 이들의 방식일 뿐이다. 손가락을 자르거나 처단하거나 멋지게 또다시 뒤통수를 치려하지 않는다. 영화는 모험을 하지만 결코 모험을 꿈꾸지 않는 생활인의 영역에 서서 마치 금을 밟고 갈팡질팡하는 아이처럼 흥미로운 광경을 선사한다. 그렇기에 금 안으로 들어서던 금 밖으로 나가던 그 모든 영역은 원래의 영지와는 다른 코미디를, 색다른 스릴러를, 색다른 여성영화를 드리우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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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 이것저것 못하는 게 없다하여 ‘괴물’로 불리는 김상만 감독의 장편 데뷔작 <걸스카우트>는 분명 부족한 점도 많은 영화다. 하지만 배우들이 각자의 몫을 충분히 해주고 있는 점은 무척이나 칭찬할만하며, 애초의 컨셉을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감독의 명민하고 감각적인 연출은 루저와 장르영화를 연계시키려는 의도를 충실히 달성한다. 돈 200만원에 울고 웃고 또 ‘대인배’마저 될 수 있는 보통 여성과 생활인들의 세계는 마침내 이 농담 같은 영화를 통해 진담 같은 웃음과 비록 미미하긴 하지만 시큰함까지 안겨주니 말이다. 관객의 표심을 공략하지 못한 부적절한 마케팅 전략과 기라성 같은 경쟁영화가 더욱 아쉽다.

필름온(film-on.kr)에 수록    

Posted by 파란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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