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tie Casey was baseball mad,
Had the fever and had it bad.
Just to root for the home town crew,
Ev'ry sou
Katie blew.
On a Saturday her young beau
Called to see If she'd like to go
To see a show, uut miss Kate said
"No, I'll tell you what you can do."
Take me out to the ball game,
Take me out with the crowds,
Buy me some peanuts and Cracker Jack,
I don't care if I never get back.
Let me root, root, root for the home team,
If they don't win, It's a shame.
For it's one, two, three strikes you're out,
At the old ball game.
Katie Casey saw all the games,
Knew the players by their first names.
Told the umpire he was wrong,
All along,
Good and strong.
When the score was just two to two,
Katie Casey knew what to do,
Just to cheer up the boys she knew,
She made the gang sing this song.
Take me out to the ball game,
Take me out with the crowds,
Buy me some peanuts and Cracker Jack,
I don't care if I never get back.
Let me root, root, root for the home team,
If they don't win, It's a shame.
For it's one, two, three strikes you're out,
At the old ball game.
피터 개몬스가 부르는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출처 : espn)
아마도 메이저리그의 팬이라면,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이라고 하면, 해리 캐리가 조건 반사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시간이 머물고 있는 리글리 필드를 배경으로 큰 소리로 고래고래 외치던 그의 모습은 리글리 필드가 상징하는 고색창연함과는 이질적인데도 감동 그 자체였다. 1945년에 카디널스의 브로드 캐스터로 데뷔한 그는 1970년에는 어슬레틱스를 거쳐서 1971년부터 화이트삭스의 마이크를 잡으면서 '바람의 도시'인 시카고와 인연을 맺었다. 리글리 필드가 그의 노래방이 된 것은 1982년이었다.
사실 해리 캐리의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은 리글리 필드의 명물로 굳어졌지만, 그가 처음으로 '세븐 이닝 스트레치'에서 이 노래를 부른 것은 1976년, 즉 화이트삭스 시절로 그 때의 무대는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볼파크였던 코미스키 파크였다. 1998년 2월에 그가 심장발작으로 고인이 된 이후로는 리글리 필드는 그때 그때에 특별 캐스터가 초청되어서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을 선창하고 있다. 더 이상 리글리 필드에서 그의 모습과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리글리 필드에서 울려 퍼지는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보통 "Let me root, root, root for the home team"이라는 대목에서 'the home team'을 자신이 응원하는 팀 이름, 즉 홈팀의 이름을 넣어서 부르고 있다. 그런데, 컵스의 경우에는 두음절인 관계로 어떻게 해도 'the home team'이라는 세음절에 딱 들어맞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리 캐리가 고안해낸 것이 '컵스 Cubs'가 아닌 '커비스 Cubbies'였다. 일부의 팬들은 이 변화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당연히 대세는 해리 캐리의 '커비스'였고, 리글리필드에서는 '커비스'가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야구 노래의 대명사와 같은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이지만, 그 이전에도 히트를 친 야구 노래들은 존재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야구 노래는 1858년에 나이아가라 야구 클럽의 선수가 발표한 'Base Ball Polka'이다. 또한, 그 선수에 의해서 1867년에는 'Home Run Polka'가 만들어졌다는 기록은 있지만, 'Base Ball Polka'도 그렇고 그 가사가 어떻게 되는지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Base Ball Polka'나 'Home run Polka' 등과 같이 한정된 지역이 아닌 일반에 널리 퍼진 최초의 히트곡(?)은 1889년에 발표된 'Slide, Kelly, Slide'이다.
여기에서 켈리는 당시의 슈퍼스타인 킹 켈리를 가리킨다. 킹 켈리는 보스톤 비니스터(현 브레이브스)의 유니폼을 입고 있던 1887년에 84도루를 성공시켰을 정도로 준족을 자랑했다. 화이트 스타킹스(현 컵스) 시절인 1884년과 1886년에는 각각 0.354와 0.388로 타율왕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한 시즌에 10개 안팎의 홈런 - 당연히 데드볼 시대였기에, 그 대부분이 인사이드 파크 홈런이지만 - 을 기록하였다. 또한, 메이저리그에서 최초로 히트 앤드 런을 도입한 인물이 타이 콥이라는 설도 없지는 않지만, 그가 고안해낸 작전으로 간주되고 있다.
1878년부터 1885년까지 8시즌의 도루 기록은 알 수 없지만, 1986년부터 1893년까지 8시즌동안 기록한 총 도루수는 무려 368개이다. 1경기 6도루를 성공시키는 등 뛰어난 스피드를 자랑한 그가 루상에 나가면, 관중들은 입을 모아서 'Kelly, Slide, Kelly'를 불렀다. 'King of Diamond'라고 불린 마이클 킹 켈리는 '베이스볼'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도 하였다. 1894년에 폐렴으로 37세에 요절한 그는 죽기 전에 들것에 실려서 병원으로 향하던 중에 뒤를 들고 있던 사람이 실수로 놓치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그 때에 그는 "내 인생에서 마지막 슬라이딩을 기록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유머가 넘쳤다.
'Kelly, Slide, Kelly'가 상당한 히트를 기록했지만, 야구를 대표하는 노래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Kelly, Slide, Kelly'의 부족한 2%만이 아닌 영원히 야구와 함께 운명을 같이할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이 만들어진 것은 1908년이었다.
어느날 뉴욕의 지하철을 타고 가던 작사가인 잭 노워스의 눈에 폴로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자이언츠의 경기 선전 포스터가 보였다. 이전까지 단 한번도 야구장에 간 적이 없던 그였지만, 강한 영감에 사로잡혀서 단 15분만에 완성한 것이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이었다. 그리고, 친구인 알버트 틸저가 곡을 붙였다. 알버트 틸저 역시 단 한번도 야구장에 간 적이 없었다. 결국, 야구와는 전혀 인연이 없던 두사람에 의해서 야구와 관련된 불후의 명곡이 탄생한 셈이었다. 사실 이 노래가 이렇게 빅히트를 기록할 것이라고는 잭 노워스는 물론이고, 알버트 틸저도 쥐꼬리만큼도 생각하지 못했다.
열광적인 야구팬인 케이티 케이시에게 함께 쇼라도 보러 가자고 데이트를 신청하는 남자에게 야구장에 데리고 가달라는 이 노래가 '야구계의 Happy birthday'가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로는 세가지 정도를 거론할 수 있다. 첫째는 당시에 대유행한 5센트짜리 동전을 넣으면 자동으로 연주되는 피아노의 곡으로 사용된 점이고, 둘째는 극장에서 단편 영화 사이의 프로그램으로 피아노 연주가 행해졌는데, 이 노래가 그 연주를 통해서 자주 노출된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08년 시즌은 양대리그 모두다 극심한 대혼전을 거듭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는 점이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에 오른 컵스와 자이언츠, 파이러츠와의 승차는 불과 1경기였고, 아메리칸리그에서는 인디언스와 화이트삭스를 각각 0.5경기와 1.5경기로 따돌리고 타이거스가 우승을 차지하였다.
어쨌든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이 뜻밖에도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어느 세계나 그렇듯이 'Jack! Jack! The Yiddisher Ball Player'나 'The National Game March' 등 그 아류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특히, 조지 코한의 'Take Your Girl to the Ball Game'은 제목조차도 노골적으로 카피하는 등 상당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잭 노워스는 1927년에 주인공인 케이티 케이시를 넬리 켈리로 바꾸고, 또한 가사의 일부를 개작한 새로운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을 내놓았다.
Nelly Kelly loved Baseball games,
Knew the players, knew all thier names.
You could see her there ev'ry day,
Shout "Hurray"
when they'd play.
Her boy-friend by the name of Joe
Said, "To Coney Isle, dear, let's go",
Then Nelly started to fret and pout,
And to him, I heard her shout.
Take me out to the ball game,
Take me out with the crowds,
Buy me some peanuts and Cracker Jack,
I don't care if I never get back.
Let me root, root, root for the home team,
If they don't win, It's a shame.
For it's one, two, three strikes you're out,
At the old ball game.
Nelly Kelly was sure some fan,
She would root just like any man,
Told the umpire he was wrong,
All along,
Good and strong.
When the score was just two to two,
Nelly Kelly knew what to do,
Just to cheer up the boys she knew,
She made the gang sing this song.
Take me out to the ball game,
Take me out with the crowds,
Buy me some peanuts and Cracker Jack,
I don't care if I never get back.
Let me root, root, root for the home team,
If they don't win, It's a shame.
For it's one, two, three strikes you're out,
At the old ball game.
1908년에 발표된 원조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의 부제가 'The Sensational Base Ball Song'이었지만, 1927년의 부제는 'The Famous Baseball Song'이었다. 눈치가 빠른 분은 알아차렸겠지만, Sensational과 Base Ball을 Famous와 Baseball로 바꾸었을 뿐이다. 잭 노워스가 개작을 발표한 이유는 저작권이 이 해로 끝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확실히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당히 큰 일부라는 사실을 'Take me out to the ball game'도 증명하는 셈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잭 노워스는 이 노래를 만들 때까지 단 한번도 야구장에 가본 적이 없었는데, 그가 처음으로 야구를 보러 야구장을 찾은 것은 여러가지 설들이 있다. 일설에는 1940년 6월 27일부터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을 기념하는 날이 된 까닭에 1940년대의 어느날이라고 하고, 브룩클린 로빈슨(현 LA 다저스)가 NL을 제패한 1916년에 에베츠 필드를 찾아서 누구나처럼 관중석에서 열광했다고도 한다. 여하튼 이 노래를 계기로 잭 노워스는 후에 캘리포니아에서 리틀리그를 창설했을 정도로 광적인 야구팬이 되었다.
50주년이 되던 1958년에 잭 노워스는 평생동안 메이저리그의 경기를 볼 수 있게 되었지만, 1959년 9월 1일에 80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하지만, 해리 캐리가 "내가 가사를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노래"라고 말한 것처럼 메이저리그의 경우에는 국가와 같은 존재이고, 야구가 계속되는 한 언제나 7회는 올 것이고,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에 대한 경의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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