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떤 남자가 프랑스로 떠나자고 한다면?
사랑을 꿈꾸는 섬세한 감성의 영화 <브로큰 잉글리쉬>
  노윤영 (nn2u)
  
<브로큰 잉글리쉬>
ⓒ 진진
브로큰 잉글리쉬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존재할까? 그래, 있을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직접 보지 못했을 뿐, 분명 어딘가에는 모든 것을 갖춘 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행복할까. 모든 것을 다 갖추었고, 못하는 것도 없으니 더 이상 불행도, 슬픔도 없는 것일까.

 

겉으로만 보면 영화 <브로큰 잉글리쉬>의 노라(파커 포시 분)는 완벽하다. 유명 호텔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그녀는 후배에게나 상사에게나 인정받는 탁월한 실력의 호텔리어다. 또한 다정다감한 성격과 말투를 가졌으며, 인간관계도 좋은 편. 게다가 외모까지 아주 매력적이어서 누구나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다. 누가 봐도 부러울 것 없는 완벽한 뉴요커 노라.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인생은 칠흑 같은 어둠이니, 이유인즉슨 바로 '남자 문제'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노라는 스스로 지독히도 남자운이 없다고 믿는다. 오래 전에 사귀었던 남자는 소개시켜준 베스트 프렌드에게 뺏겼고, 우연히 만난 유명 할리우드 영화배우와 뜨거운 하룻밤을 보냈지만 그는 이미 유명 여자배우와 연애 중이었다. 부모의 주선으로 소개받은 한 남자는 첫 만남에서 옛사랑을 잊지 못하겠다며 돌연 자리를 뜬다.

 

지지리도 남자복이 없다고 믿게 된 그녀는 냉소적이고 허무한 인생관을 스스로에게 주입 시킨다. 자신에게는 진정한 사랑이 오지 않는다고, 멋진 인연과 사랑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황금 같은 여름휴가에 여행도 포기하고 집에 처박혀 있기로 한 것도 결국은 자신을 좀 더 진정시키면서 불행과 고통을 잊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믿지 않는 30대의 사랑 이야기

 

  
<브로큰 잉글리쉬>
ⓒ 진진
브로큰 잉글리쉬

영화 <브로큰 잉글리쉬>는 미국독립영화계의 거장 존 카사베츠의 딸인 조 R. 카사베츠의 작품으로 한 30대 여성의 사랑(혹은 인생) 찾기를 잔잔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린다.

 

제2의 '소피아 코폴라'로 불리기도 한다는 카사베츠 감독의 연출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그 나이대 미혼자들의 마음을 톡톡, 두드리는 매력을 발산한다.

 

굳이 30대 여자들을 위한 영화라고 규정지어 볼 필요는 없다. 노라가 여자라는 것을 지우고 본다면, 이 영화는 사실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연애에는 '젬병'인 독신들의 영화다. 그것도 (사회적으로 그렇다고 규정되어진) 혼기를 지난 독신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풍족한 삶을 즐기지만 아직도 가슴 한편에서는 뜨거운 사랑을 꿈꾸고 있는 이들. '이제 내게 사랑의 마법은 없다'는 냉소와 '그래도 혹시나' 싶은 열정이 공존한다.

 

"난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노라의 이 고백은 매우 복잡한 그녀의 심정을 대변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집-직장-친구의 반복적인 일상은 계속되고 자신은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릴 것이다. 늘어가는 건 담배와 술, 그리고 체념이다.

 

그런 노라의 삶에 난데없이 한 프랑스 남자가 끼어든다. 이때부터 지리멸렬했던 그녀의 삶은 스펙터클하게 변한다. 진정한 사람이 왔다고 믿는 노라는 줄리앙을 마음 깊은 곳까지 받아들이며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업무차 뉴욕에 들렀던 줄리앙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야 하는데…….  노라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를 잊고 뉴욕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인생에 단 한 번 있을지 모르는 '마법 같은 사랑'에 자신을 내던져야 하나.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영화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외로운 한 호텔리어의 내면을 추적한다. 그녀의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브로큰 잉글리쉬>는 감각적이고 낭만적인 내용와 영상을 버리고 현실적이면서도 솔직한 그녀들의 이야기와 고민에 주목하는 영화다.

 

사랑의 낭만과 환상을 믿기에 30대 후반의 나이는 너무 많은 것일까. 사랑을 위해 파리로 같이 떠나자는 줄리앙의 제안은 노라에겐 너무나 허황된 것이었다. 그녀에게 뉴욕은 성공적인 호텔리어의 삶을 있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삶의 모든 궤적이 놓인 장소다. 연락만 하면 만날 수 있는 친구도 모두 그곳에 있다. 그러니 짧은 며칠 동안 만난 프랑스 남자의 탈출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현실의 요소들을 쉽게 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현실로 다시 돌아온 그녀는 며칠을 의미없이 보내다 회사를 그만두고 만다. 그리고는 친구에게 말한다.

 

"난 겁쟁이였어."

 

노라는 그때 비로소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진심으로 사랑을 느꼈던 줄리앙.

 

"왜 나는 그와 함께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이것은 친구에게 한 말인 동시에, 자신의 내면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왜 난 과감하지 못한가. 인생에 단 한 번밖에 없을지 모르는 기회를 왜 떠나보냈는가.

 

<브로큰 잉글리쉬>라는 제목이 주는 이미지처럼, 영화는 항상 가던 길만 가고 보던 것만 보던 노라의 일상에 작지만 의미있는 파문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것은 노라의 인생과 생각을 뒤바꾸어 놓는다. 중요한 것은 불만을 늘어놓거나 인생한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라는 것을 말해준다. 떨리는 마음으로 굳게 내딛는 그 한 걸음이 바로 '사랑의 마법'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노라는 아마 깨달았는지 모른다.

 

카사베츠 감독의 이 영화는 다소 소품처럼 보인다. 또한 상투적이기도 하다. 영화 처음 10분만 보더라도 결말이 어떻게 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니까. 색다른 창의성이나 놀라운 이미지들을 보긴 어렵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별 볼 일 없는 영화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30대 후반 여성의 솔직한 심정과 섬세한 표현, 그리고 과장되지 않은 '마법 같은 사랑'의 결말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솔직하면서도 담백한 러브스토리를 보고 싶은 사람, 일상 속 '작지만 큰 마법'을 믿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영화다.

2008.07.04 18:04 ⓒ 2008 OhmyNews


( 현재 0건 )
기사가 맘에 드시나요? 좋은 기사 원고료는 글을 쓴 기자에게 추가원고료로 지급됩니다.
  제목 이름 입력일시 찬성 반대 조회
당신의 소중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