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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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 soon as Judas had taken the bread, he went out.

   And it was night.

저는 가능하면 그 당시의 현장을 상상해 보려고 나름대로 고심을 합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문화와 지금 2천년의 세계화에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지금의 문화와는 그 차이가 엄연히 다름도 있고 이해의 정도가 완전할수는

없습니다만 보편적인 인간의 본질적인 점은 대동소이하기에 가능한도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지금 이 장면은 기독교사적으로 희비가 교차되는 지점입니다.

선택받은자와 그 가운데서 불행하게도 유기된 자와의 비극적인 순간이며

교차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제가 말을 시작하면 마치 칼빈의 예정론을 말하는가 하실분도

있습니다만 저는 생각보다 칼빈의 신학에 대하여 매우 무지합니다.

기독교 강요를 읽어 보려다가 엄청난 분량에 포기해 버렸습니다. 다만 요약분을

읽어보기는 했지만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신양성경의 절대 분량을 차지한 바울서신이 아마도 제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꼭 신학자의 주장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바울서신을 읽어본다면

넉넉하게 알 수 있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선택과 유기에 관하여서는 예수의 말씀도 결정적인 단서를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함을 받은자는 많지만 택함을 입은자는 적고 먼저된자와

나중된자의 비유를 통해서도 알수 있습니다. 또한 마태의 기록에서 메시아의

사역의 핵심을 포착할 수도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또 요한 역시 13장 1절에 아주 의미있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것이 아니라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요한의 기록이며

마태도  "자기 백성을" 이라고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과 마태

역시 유대인이며 이스라엘이지만 메시아의 오심에 대하여 일반적인 선택받은

민족주의의 세계관과의 선긋기를 하고 있다는것을 간과하면 안됩니다.

 

예수의 고뇌에 가득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룟 유다는 그렇게 자기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자리를 나갔습니다. 요한의 표현에 의하면 그 마음에 사탄이 들어

가서 사탄의 임무를 위해 제자들과 예수와의 함께하던 그 자리를 나간것입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를 분명하게 인식할 때 우리는 쉽게 포기하거나 낙심

하거나 시험에 들지 않게 됩니다. 성경에도 보면 많은 자리가 있습니다. 이 자리

는 나의 의지와  선택과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습니다.

 

자리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만 좀더 근원적으로 본다면 누구와 함께 하는

자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신분의 귀천의 자리가 아닙니다.

내가 어떤 위치인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은 자리때문에 성경의 중요한 인물이 된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한것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요셉의 자리가 애굽의 노예의 자리

였고 감옥의 자리였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한 자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불평하기를 "내가 저 자리에만 앉았어도" 하지 않습니까?

내가 지금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못한다는 변명입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혹은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혹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의외로 신자들가운데 적잖은 사람들이 이런 불만에서 허덕이는 경우를 봅니다.

저도 물론 한때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불편하니까 교회도 은혜가

안되고 예배 시간도 지루하기만 하더군요. 세상에서 어떻하면 쓸만한 자리에

오를까를 고민하느라 이리저리 방황했습니다.

 

그런 마음이니 교회에 보면 문제밖에는 안보입니다.

이것이 문제고 저것이 문제고 좌우간 맘에 드는것이 없으니 매사가 원망이며

불만입니다. 믿음의 형제들이 권면하면 교만하다고 생색내고 은혜받는 성도를

보면 당신이 내 형편이 아니니까 그렇지 하며 불만족합니다. 공연히 시비만

늘어나며 기회를 봐서 어떻하든지 교회를 떠날 궁리만 하는 것입니다.

 

제가 과거에 그랬습니다. 그러니 무슨 기도를 할 수 있으며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으며 무슨 찬송을 할 수 있었을까요? 얼마나 황량한 심령으로 살아왔었는지요.

주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로 모든것을 다 잃어버리고 나니 그때가 얼마나 귀한

시간이며 은혜의 자리였는지를 알게 되더군요.

 

결국은 이렇게 막다른 곳에 몰려오니 하나님의 사랑이 보였습니다.

그 십자가와 돌아온 탕자를 그 더러움에도 상관하지 않으시고 부둥켜 안아주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합니다. 지금은 오히려 예전과는 분명히

비교해 보면 망한것인데도 행복하거든요.

 

과거에는 그래도 조그만 빌라 하나라도 제 소유로 있었구요. 작은 승용차도 몰고

다녔습니다. 지금은 월세방에서 이리저리 이사하느라 생고생입니다.

방 한칸에서 이웃들 들릴세라 조심스레 소리죽여가며 찬양하며 예배드리지요.

한가지 원이 있다면 마음껏 기도하며 말씀 암송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이 좋은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리이기에 그렇습니다.

 

유다는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때가 밤이었다는 요한의 증언입니다.

우리는 사실 아는것 보다는 모르는것이 더 많습니다. 왜 유다가 하필 그역할

을 맡았을까를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은 감춰진 것이며 사실은 왜 내가

이 자리에 있는가를 생각하며 왜 내가 예수를 믿었을까를 생각하며 왜 이렇게

좋으신 예수를 누구는 믿지 않고 저렇게 주님을 등지는 길을 가는것일까를 위해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가?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유기했는가를 염려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우리를 죄악에서 그의 십자가로 친히

대속 제물되신 속죄양이시며 그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를 부르셨으며

알수 없는 은혜로 부름을 받아 새생명으로 살아가는 복된 신분으로

바뀐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어떠한 의로움과 정성과 노력과 공로가 아니라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원전부터 계획하신 그 기쁘심으로 불러 이자리에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그 구원을 선물로 배푸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감격을

아는 자들이라면 불의하거나 죄악을 행하는 그들을,또는 아직도 하나님을

등지고 예수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우리도 전에 그들가운데서 옛 사람으로 그들과함께

하나님을 거역하며 살아왔던 장본인들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집중하고 찬양하며 알아야 할 것은 예수가 나에게 행하신 그

놀라운 사랑을 자꾸 기억하며 회중가운데서 증거하며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공의로우심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들을 찾아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은 이렇게 오직 예수를 향하여 그의 말씀을 향하여 그의

마음을 향하여 매일 매일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자꾸만 어지럽게 만듭니다. 자주 우리를 독려하며 충동질하는 소리에 귀를

막으십시오.

 

우리가 해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자꾸만 사람을 향하여 관심을 갖게하고

세상의 문화는 여지없이 신앙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교묘한 계략을

치밀하게 하지 않습니까? 정말로 교회와 신앙을 공격하는 것은 지금 들어나게

기독교를 욕하고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위험한 것은 광명의 천사처럼 다가오는 거짓의 소리입니다. 진리를

가장하여서 숨어들어오는 것들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거짓을

바울은 조심하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극렬하게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지 아십니까?

천사가 전한 말이라도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전하면 저주를 받을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도 믿어야 하고 율법도 행해야 한다면서 할례의식을 전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향하여 분명하게 전하는 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신 자유주의와 혼합주의와 합리적인 유럽식 사고와 신학이 지금 온통 교회를

분탕질하고 있는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들의 화려한 언어는 보수주의 교회에서

지적 만족을 느끼지 못한 계층을 향하여 폭발적인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종교간의 화합과 대화를 주장하며 복음을 이상하게 흔들고 있습니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대하여 성경의 명백한 기록과 계시에 대하여 물음표를

제시합니다. 신앙은 맹목적이 아니며  인간 이성으로 충분하게 인식하여야 하고

인간의 지성과 이성적으로 합일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가르치는 복음이 너무 단세포적이며 폐쇄적이며

극단적이며 근본주의적이기에 21세기를 향하는 세계 종교속에서 소종파로 전락하는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주장합니다. 모든 종교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이해

되어져야 하기에 타종교와의 관계에서 분별과 단절보다는 화해와 상생으로 더불어

지구 평화를 위해 함께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복음이 세상과의 화해를 요구하는 것일까요?

분명히 성령의 역사는 무조건 화평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십자가의도

안에서의 하나님과의 관계의 화목이지 본질적인 죄에 대하여 성경이 주장하고

가르치는 회개와 칭의에 대한 것이 결여된채로 단일화로 치닿는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그 안에서부터 새롭게 거듭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리는 것이 복음의 본질입니다.

 

단순히 제도적인 취약점을 개선해서 십일조가 성경적이냐 아니냐로 시간을

낭비하며 믿음과 은혜안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세워져야할 교회를 인간적인

이성주의와 인본주의적인 출발로 세워서 개혁하자는 주장의 소리는 예수 없어도

인간의 지성과 의지와 노력과 공부함으로 이땅에서 멋진 교회로 성장할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기독교의 근본적인 진리앞에서 물음표식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선문답하여서 고행과 수련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깨달아서 도에 이르자는

철학적인 사고의 출발입니다. 원래 죄인인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없는 죽은 존재

라는 성경의 진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오셔야 하는것을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 길이 예수로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도 있다는 위험한 사고입니다.

결론적으로 기독교의 진리는 오직 예수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고 사도들이

목숨걸고 전한 진리 역시 오직 예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십자가의 복음 입니다.

 

교회와 거듭난 신자들이 이렇게 간단하고 당연한 진리를 찬양하고 전하지

않는다면 도대채 무엇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허탄한 신화와 족보에 착념하지

말라는 바울의 가르침은 무엇이며 세상의 헛된 철학과 변론을 경계하라는 사도의

가르침을 이렇게 무시하면서도 예수를 전한다고 하는 것을 잘 살피십시오.

 

정말로 위험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간적이며 인본주의 사상으로 다가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세련됨과 포장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분별하는 것은

성령의 조명하심과 진리의 말씀을 붙잡지 않는한 알아볼 수 없습니다.

 

지금이 바로 기도하며 말씀으로 무장하며 성령의 은혜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서 거짓과 악의 영들과의 싸움을 할 시기입니다. 영적인 사투를 위해 진지하게

말씀앞에 서지 않고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깨어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우리는 힘을 모아서 기도해야 합니다. 악의 영들의 궤계를 밝히고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물리치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이 땅에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시고 오직 예수와 십자가와 부활과 다시오심을 전하는 성령의 사람들을 만나

연합하여서 주를 증거하게 하도록 기도합시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성령을 의지하여 간절하게 간구합시다.

주의 종들에게 진리를 알게 하옵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며 그의 의를

구하며 분연히 일어나게 하사 입을 열어서 복음을 담대히 증거할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세상에 휩쓸리지 않게 주의 자녀들의 걸음을 지키시며

그 마음과 생각을 지켜서 헛된 것에 빠지지 말게 하옵시며 늘 깨어서 주의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오직 예수 외에는 다른 길이 없으며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았으며 예수만이

생명이며 부활 이며 구주이심을 고백하며 주의 언약을 굳게 잡아서 요동하지

않게 하옵소서. 아멘.

 

2008-07-12. 주께교회에서

            →→→→→→→→→→→→→→→→→→→→→

매일 새벽에 부족한 저에게 주시는 감동을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

기라성같은 믿음의 선배들과는 감히 비교할수 없는 졸고이지만 함께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혹시라도 이메일로 받기를 원하신다면 제 메일로 연락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lkd373@naver.com  lkd37@daum.net      lkd3737@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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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님과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