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황제를 배출한 '남연군묘'
또 하나의 일상 2008/07/22 13:53
여행을 하다보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곳이 있다. '남연군묘'가 그러하다. 수년 전 다녀온 이후 뇌리속을 쉬이 떠나지 않았다. 풍수지리를 잘 모르는 나로서도 명당의 지세를 감지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묘의 앉은 자리가 아늑한 데다 탁 트인 전망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다시 찾은 남연군묘는 여전하였다. 다만 묘 앞의 은행나무가 너무 커버려서 시야를 가리고 묘 뒤의 나무들이 산의 흐름을 끊어놓은 듯하여 조금의 아쉬움이 있었다.
남연군묘에 얽힌 이야기는 그 명성만큼이나 다양하다. 이 묘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의 무덤이다. 1822년 남연군이 죽은 뒤 한 지관이 흥선군을 찾아와 명당자리를 알려 주었다고 한다. 혹은 흥선군이 당대의 명지관인 정만인에게 명당자리를 부탁하였다고 한다.
지관(풍수가)은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올(二代天子之地) 가야산 동쪽의 땅과 만대에 영화를 누릴(萬代榮華之地) 광천 오서산을 지목하였다고 한다. 두말할 것 없이 흥선군은 가야산을 택하였다. 그런데 명당으로 지목한 자리는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다. 흥선군은 연천에 있던 아버지의 묘를 임시로 탑 뒤 산기슭으로 옮기고 절을 불태우고 탑을 부순 후 이곳에 묘를 썼다. 흥선군은 후에 보덕사라는 절을 지어 그 죄책감을 씻고자 하였다.
이 자리에 묘를 쓰고 난 7년 후 차남 재황을 얻게 되었다. 그로부터 11년 뒤인 1863년에 재황은 철종의 뒤를 이어 12살의 나이로 왕위로 오르게 된다. 그의 아들도 후에 순종이 되었고 대한제국 선포 후 황제의 명칭을 얻게 되었으니 가히 2대 천자를 낳은 땅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터만 보면 지관의 안목이 대단함을 알 수 있지만 2명의 천자가 나온다는 설은 후대에 덧붙여진 해석일 수도 있다.
남연군묘는 풍수지리학상의 명당의 조건을 모두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묘 뒤로 우뚝 솟은 석문봉이 주산이 되고, 좌로는 옥양봉과 만경봉이 청룡의 세를 이루고, 우로는 가사봉, 가엽봉, 원효봉 등이 백호의 세를 이루어 무덤을 감싸고 있다. 멀리 보이는 봉수산이 안산이 된다. 남연군 묘 앞의 논,밭이 가야사 자리이고 묘가 있는 언덕배기가 금탑이 있던 자리이다.
보호각의 창이 작아 상여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건물 하나하나에도 세심한 배려가 중요하겠다.
남연군묘는 그 자리의 예사스럽지 않음을 대변하듯 조금은 높은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언덕 옆에는 최근에 보호각을 지어 '남은들 상여'를 재현하여 보관하고 있다. 당시에 썼던 상여는 중요민속자료 제31호로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남연군묘를 이장할 때 운구했던 상여이다. 연천에서 가야산까지의 먼 길을 종실의 무덤을 옮기는 일이여서 상여가 지나는 길목마다 해당 지방민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상여를 마지막으로 운구했던 광천리(남은들) 사람들에게 이 상여가 기증되었다.
오페르트 도굴사건과 그후의 천주교 박해, 대한제국의 멸망과 일제로의 식민지화 등 일련의 역사를 상기해 보면 이 땅이 과연 명당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개인의 영욕은 충족되었을지라도 나라의 운명과 얽힌 이야기로는 너무나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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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npenn 2008/07/22 17:07
신록이 무성한 여름에 보니 새로운 느낌입니다.
지난해 12월 초 가야산에 오른 후
남연군 묘를 방문햇을 때는 일씨년 스러웠지요~`
트랙백 걸어 두었으니 참고하십시오. -
BULGOM 2008/07/23 08:06
황제 ? ? 제국주의 일본이 실권은 다 빼앗고 던져준 개뼉다귀보다 못한 명목상의 황제가 아니었던가 ?
바보 강화도령 철종부터 마누라와 부친에게 휘둘려 꿔다 놓은 보릿 자루 역할만 하다
마누라는 미친 개 제국일본의 3류사무라이들 칼에 죽고 자신역시 쩍바리넘들의 조선병탄의 야욕에
독살당한 멍청이 고종 그 뒤를 이은 일제의 꼭둑각시 순종등은 이땅의 역사에서 씻어내 버리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땅의 오천년역사에 감히 황제를 칭할수 있는 전무후무하고 유일무이하며 공전절후한 불세출의
인물은 오로지 광개토대제 고담덕 한분 뿐일지니 반만년 외세침탈의 약소국역사에 유일무이한
정복군주 광개토대제 그를 숭모하고 본받아 약소국가의 통한을 떨쳐내고 쩍바리 넘들 짱골라넘들
로스케넘들이 벌벌 떨 강대하고 부유한 국가건설에 일로정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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